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9)
나를 개 대가리로 아시오?
사울 왕실과 다윗 왕실 사이에 오랫동안 싸움이 계속되었다. 다윗 왕실은 갈수록 강해졌고, 사울 왕실은 갈수록 약해졌다.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보셋이 왕이 되긴 했지만 실권은 사울 밑에서 사령관을 지내던 아브넬 장관이 쥐고 있었다. 실권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아브넬 장관은 사울의 후궁이었던 리스바를 범하였다.
이스보셋이 자기 아버지의 후궁을 범한 아브넬을 꾸짖자 아브넬은 몹시 화를 내며 항의한다.
“아브넬은 몹시 화를 냈다. 나를 개대가리로 아시오? 이 날까지 나는 당신의 선친 사울의 왕실과 그 동기간과 동지들에게 충성을 바쳐 당신을 다윗의 손에 넘기지 않고 있는데, 당신은 오늘 하찮은 여자 일로 나를 책잡으시오?”(공동번역, 사무엘하 3;8)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개역성경).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개역개정).
<공동번역> 성서의 “나를 개대가리로 아시오?”가 <개역성경>에는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로 <개역개정>은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라고 되어 있다. 개역과 개역개정에는 공동번역에 없는 ‘유다의’라는 말이 더 있다. 개역의 이해를 따라 공동번역식대로 번역하자면 “나를 유다의 개대가리로 아시오?”가 될 것이다.
사무엘하 3장 8절의 본문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개대가리’는 무슨 뜻인가? 둘째, 개역과 개역개정에는 반영되어 있고, 공동번역에는 삭제되어 있는 히브리어 본문의 ‘아세르 리후다’(유다의, 유다에 속한, 유다쪽 편을 드는)는 여기에 어떤 구실을 하는 것인가?
첫째, ‘대강’나 ‘대가리’는 둘 다 ‘머리’의 속칭이다. 여기에 ‘개’라는 접두사가 붙어 ‘개대강이’ 혹은 ‘개대가리’가 되었는데 주석가들은 세 가지 가능한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1) “개만도 못한 놈”의 완곡어법 2) “개의 얼굴을 한 추악한 인간”으로 이 두 경우는 우리말의 ‘개새끼’나 ‘개자식’에 해당하는 욕으로 이해된다. 즉 아브넬은 이스보셋이 자기를 개만도 못한 놈, 혹은 개새끼로 취급하냐고 불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개대가리’는 곧 ‘개’를 가리키는 것이고, 때로 개는 자기비하의 표현으로 쓰인다.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무비보셋을 같은 상에서 접대했을 때 므브보셋은 황송한 생각이 들어 “이 죽은 개만도 못한 소인이 무엇이기에 이렇듯이 살펴주십니까?”(사무엘하 9:8) 하며 감격했던 일이 있다.
둘째, “내가 유다의 개대가리란 말이요?”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하로쉬 켈렙 아노키 아쉘 리후다”는 그 자음본문을 달리 읽으면 “내가 유다 편을 드는 갈렙 족속의 우두머리란 말이오?”이다. ‘아쉘 리후다(유다의)’는 70인역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으므로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본문 역사에서 후대에 첨가된 주석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해를 따른다면 아브넬은 지금 자기가 사울 왕실의 원수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가능한 뜻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그대로 다 참고하면서 이 표현이 지닌 묘한 뜻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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