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6)
영혼의 산책로
덕수궁(德壽宮) 돌담길은 담을 허무는 길이다. 그 길을 지나는 이들의 마음에 담이 쌓이지 않는다. 있던 울타리마저 어느새 형체가 사라지고 마는 마술이 펼쳐지는 길목이다. 지구촌 어느 곳에 그런 돌담길이 과연 있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그 허물어진 자리를 고스란히 들추어내지 않는다.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길을 걷게 한다. 인파(人波)에 섞여 있어도 휩쓸리지 않게 해주고, 홀로 있어도 고독하지 않게 해준다. 지나치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게 하고, 머물러 있어도 여전히 걷게 한다.
궁궐과 세속을 지엄하게 갈라놓은 그 담벼락이 기이하게도 무정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다. 또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꾸짖듯이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한때는 그 앞에서 머리 하나 제대로 들지 못했던 나리들이나 드나들었던 거리가 도심(都心) 속의 고풍(古風)이 되니, 그 예전의 허황된 위신을 지혜롭게 물리치고 어느새 서정시를 닮은 풍습을 배웠나 보다.
돌담은 그대로이나 세월의 변모를 알아차린 것인지 아니면, 본래 그 담을 세운 이들의 마음이 넉넉했던 바가 이제야 드러나는 것인지 알 길은 없다. 헌데 그곳에는 황성(皇城) 옛터의 쓸쓸한 자취가 아니라는 놀라움이 분명코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몸이 되어 자기의 곁을 아무런 대가를 주장하지 않고 내어주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궐(闕) 안의 풍경이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다. 도리어 담 밖의 정취가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거리낌 없이 열고 만나는 광장이 필요한 때가 있고, 누구의 시선에도 노출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자유를 누릴 밀실로 돌아가는 시간도 있다.
그런데 광장과 밀실이 하나로 이어진 통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이 돌담길이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면서도 혼자만의 자유가 지켜지는, 그래서 닫혀 있지 않으면서 또한 감싸 안는 기운 안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영혼의 산책로가 그곳에 있다.
한 두 사람이 겨우 지날까싶게 좁고 그다지 길지 않은 이 돌담길이 수도(首都)의 한 복판에 있음은 예사롭지 않은 축복이다. 가을이 스치는 돌담에는 빛깔이 달라진 나뭇잎들이 그림처럼 붙어있기도 하고, 늦은 저녁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은 이름 모를 행인1, 행인2, 행인3, 행인4…의 발걸음을 정답게 안내하는, 키가 큰 마음씨 좋은 파수꾼이 된다.
자동차와 네온사인과 경적이 무례하게 지배하고, 혼탁한 공기를 토해내듯이 뿜어내는 자본의 허파에서, 고적(古跡)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자리를 잡은 돌담길은 인간에 대한 예절이 아직도 남아 있는 문명이다. 도처에서 높이 쌓아올리는 성채(城砦)의 영광은 여기서 오히려 초라해진다.
인간의 온기(溫氣)와 건축의 정겨움이 하나가 되어 있는 거리는 그래서 쓸쓸하지 않다. 번잡함으로 피로하게 하지 않는다. 그저 아름답다.
도시는 이러한 경치를 포기하지 않을 때 우울한 회색이 되지 않는다. 산책할 수 없는 도시가 되는 걸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이들이 날로 늘어난다면, 그건 이내 현실이 되는 꿈의 위력을 가질 것이다. 뭇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때 돌담 아래를 걷는 3월의 밤이 사뭇 정겨워만 간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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