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운전석 옆에 나란히 앉은 설정순 집사님도 남편 박동진 아저씨도 모두 눈이 젖을 대로 젖어 있었다. 작실로 올라가다 만난 이사 차, 고만고만한 보따리들이 차 뒤에 되는 대로 실려 있었다.
설정순 집사님 내외가 문막으로 이사를 나가는 길이다. 때가 겨울, 두 분 모두 환갑의 나이, 이제 어디로 나간단 말인가. 내 땅 하나 없이 남의 땅 붙이는 것도 이젠 한계, 두 분은 떠밀리고 있었다. 드신 약주로 더욱 흐려진 아저씨의 젖은 두 눈이 안타까웠다.
“건강하세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애써 웃으며 그렇게 인사할 때 두 분은 차창 밖으로 내 손만 마주 쥐었다. 뭔가 하려던 말이 주르르 흘러내린 눈물에 막히고 말았다.
마침 도로 포장을 위한 공사 중, 올라오는 차와 마주쳐 이사차가 길옆 논으로 피해 들어갔다. 한 바퀴 논을 돌아 나온다는 것이 그만 논에 빠지고 말았다.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 밀었지만 계속 헛바퀴, 진흙만 튕겨냈다. 궂은 길, 떠나기도 쉽지 않았다. 차를 후진시킨 후 짚단을 깔고서야 어렵사리 길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이내 떠난 차. 저만치 멀어지면서도 차창 밖 한참 동안 들어갈 줄 모르는 손, 흔드는 두 손, 훠이 훠이, 이젠 돌아오기 쉽지 않을 고향을 향해,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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