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앉아 얘기하던 한 아이가
무인도에 떨어지면 뭣부터 하겠느냐 물었을 때
아이들은 돌아가며 말했지
살려 달라 모래 위에 크게 쓰든지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던지
지나가는 배를 기다려 옷을 흔들겠다고
뚱딴지 같이 어떤 녀석은
뒷간부터 짓겠다더군
뭐라 할까 망설이다
난 발가벗고 잠을 자고 싶다 했어
모두들 웃었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어
인습의 굴레란 참 우스운 것이지
무섭기도 하구
언젠지도 모르고 한번 쓰기만 하면
좀체 벗기는 어려운 것
문득 거울 속 얼굴과 바라보는 마음이 다른 것
허우적거려도 잡히는 것이 철저하게 날 붙잡고 있는 것
정말이야
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먹을 걱정 살 걱정
그런 것 모두 잊고
그냥 잠을 잘 거야
모두 벗고 팔다리 맘대로 뻗고 말야
그런데 무인도가 있을까
사람 살지 않는 섬이
아직도 있을까
혹 있다 해도
거기 혼자 떨어질 수 있을까
응, 그대야
<얘기마을>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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