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실의 김천복 할머니, 섬뜰의 준이 어머니, 단강의 안갑순 집사님 마을대표인양 세 분이 모였다. 주일 낮 예배, 재종을 치고서 몇 곡 찬송을 불렀지만 더 이상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린 준이와 소리, 아내, 나까지 합하면 7명이다. 아마 교회가 세워진 이래 가장 작은 인원이 모였지 싶다. 전날 오랜만에 내린 비, 비 기다리며 미루어온 파종을 주일이라 해서 미룰 순 없었던 거다.
어버이 주일, 혹 모자라지 않을까 염려하며 산 카네이션 꽃이 뒤에 덩그마니 남았다.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고, 어쩜 내 견디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숫자일 거라고 그렇게 누누이 자신에게 이르면서도 역시 견디기 어려운 건 숫자에서 오는 무게감이다. 한두 번 쌓이다 보면 게을러지고, 타성에 젖게 되고, 굳게 되는 법, 두려운 건 바로 그것이다.
구릿빛 얼굴, 미안한 표정으로 저녁 예배에 나온 교우들에게 어쩌겠냐고, 지금의 형편으로야 어쩌겠냐고, 하루 빨리 마을이 복음화 되어 주일 하루만은, 오전 한때만이라도 모두들 쉬기 전에는 품앗이로 일하는 이곳에서야 어려운 일 아니겠냐고 위로를 건넨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보다도 사람은 기계가 아닌데 싶은, 그런 절실한 마음으로.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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