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교장 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소탈하신 분이셨다. 자신의 교육철학,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 은사와 제자라는 말, 교육자로서 갖는 보람 등을 말씀하셨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교장 선생님의 웃음은 유난히 맑고 많으셨다. 나이가 인간의 순박함을 지워간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쉬운 생각이지 싶다.
전교생이 80명이 채 안 되는 이 곳 단강초등학교. 이곳의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어린이 문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 년에 한번쯤이라도 전교생의 글을 모아 하나의 작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 되겠지 싶다. 서툴더라도 건강한 글들이 실리리라. 어쩌면 농촌에 대한 가장 꾸임 없는, 정직한 묘사와 고발이 되리라. 때로, 아니 많은 경우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정확히 보니까 보람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가끔씩이라도 동화를 써서 어린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어도 좋겠지 싶다. 가능하다면 이곳 농촌 이야기를 담고 싶다.
또 하나는 도서관의 운영이다. 언제라도 어린이들이 책을 빌려 볼 수 있도록 하여 이곳의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좋은 책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티 없이 자라는 어린이들이 좋은 책을 읽는다면 더욱 좋은 결실이 있겠지.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을 만나고 싶다. 가슴으로 말이다. 흙과 함께 살면서 흙을 싫어하지 않도록, 끝내 흙을 떠나지 않도록, 흙을 사랑으로 지켜갈 수 있도록 가슴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참된 만남을 위해선 수화 배우듯 말없이도 마음으로 통하는 한 언어를 배워야겠지.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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