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을 사용하는 요즘이야 맛보기가 힘들어졌지만 불을 때 밥을 짓던 어릴 적엔 밥솥 밑에 눌어붙은 누룽지 맛이 일품이었다. 누룽지는 좋은 간식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숭늉맛과 함께 누룽지에 물을 부어 만든 눌은밥의 구수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아있다.
난 특별히 눌은밥을 좋아했다. 눌은밥을 좋아한다는 걸 은근히 강조했고, 식구들도 인정할 만큼 난 눌은밥을 즐겨 먹었다.
뭘 먹어 키가 크냐고 누가 물으며 눌은밥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눌은밥을 좋하했던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땐 단순히 눌은밥이 좋아 그러는 줄 알았지만 지금 와 생각하니 눌은밥을 좋아했던 건,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
어릴 적엔 분명 먹거리가 넉넉지 못했다. 한껏 배불리 먹는 것에 대한 미련이 늘 남아있던 때였다. 왠지 그릇을 비우면 아쉬움이 남곤 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게 눌은밥이었는데 ,난 은근히 눌은밥을 좋아한다는 걸 알려 놓음으로써 눌은밥을 우선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은근히 말을 둘러대 유리함을 차지하려고 했던 어릴 적 눌은밥, 지금의 난 또 무엇을 좋아한다 하여 내 좋아하는 것들을 그럴 듯이 차지할 유리한 지점을 찾고 있는 것인지.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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