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작실 광철씨 네서 속회예배를 드리기로 한 날, 비가 내렸습니다. 봄비 치곤 차기도 하고 빗발도 굵은 비가 스산한 바람과 함께 진종일을 내렸습니다. 어둠이 내리도록 비는 그치질 않았습니다.
작실마을 교우들이 김천복 할머니네로 모였습니다. 마을 첫째집인 할머니 네서 모여 광철씨 네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던 중 다들 모여 길을 나섰는데 보니 아무고 손전등을 가져온 이가 없었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라 한치 앞이 어둠이고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광철 씨네 희미한 불빛까진 온통 어둠에 가렸는데 불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난감해 하고 있을 때 얼른 김천복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가더니 양초에 불을 붙여 왔습니다.
촛불을 켜들고 길을 나섭니다. 한걸음씩 촛불로 어둠을 지우며 좁다란 밭둑을 걸어갑니다. 불어대는 비바람이 촛불을 흔들자 이내 초는 납작 자지러져 어쩔 줄을 모릅니다.
내리는 비는 우산으로 가리고, 흔들리는 촛불은 몇 개 손 모아 지키며 한 걸음 한 걸음 위태하게 앞으로 갑니다.
낮에도 쉽지 않은 광철씨 네로 오르는 언덕배기 돌길, 비에 젖어 더욱 미끄러운 언덕길을 촛불 하나 감싸고 한 무더기 되어 오르는 우리가, 촛불 같은 우리가, 마치 천국 길을 오르듯...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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