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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by 한종호 2021. 12. 31.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를 하루 지나서
비로소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

문득 한낮의 볕이 좋아서 
모처럼 따뜻한 볕이 아까워서

칠순을 넘기신 엄마랑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한 폭의 땅이 
평생 살아갈 집이 되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줄줄이 선 산책길을 따라서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이 구불구불 걸어갑니다

사찰 내 서점에서 마주선 백팔 염주알을 보니
딸아이의 공깃돌을 옮겨가며 숫자를 헤아리던 기억에

책 외에 모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습니다
옆에 계신 친정 엄마한테 이십여 년만에 사달라는 말을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손수 몇 가지 염주알을 굴려보시더니 
이게 제일 좋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렇지

제가 첫눈에 마음이 간 밝은 빛깔의 백팔 염주알입니다
엄마가 한 말씀 하십니다, "평생 동안 쓰면 되겠네"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백발 배를 다시 시작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2005년 5월 15일 길상사 음악회 때 하늘을 울리던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함께 하신 신청곡

임형주의 목소리로 아베마리아를 듣으며
이어서 12월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며

나도 참
숨을 되뇌이면서

백팔 번의 엎드림으로 숨을 내쉬고
백팔 번의 일어섬으로 숨을 들이쉬며

땅으로 몸을 굽혀 엎드리지 않고서야
하늘로 머리가 뚫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처럼 단단해진 심장과
굳어진 몸을 조율합니다

백팔 번의 번뇌가
백팔 번의 감사함이 되고

부처의 손가락이
예수의 손가락이 되어서

내 손가락 끝에 걸터 앉은 염주알이 
천천히 숨을 고르듯 노래를 부르듯 굴러갑니다

하늘이 땅이 되던 예수의 무릎과
땅이 하늘이 되는 성령의 바람과

백팔 염주알과 사이 좋은 벗이 되는
이태석 신부님의 묵주알을 나란히 놓으며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진리 안에서

오늘밤에도 달과 별이
2021년에서 2022년으로 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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