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3)
강포한 남자와 근면한 남자
강포한 사람과 근면한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한번은 일본어 성서와 우리 말 번역 성서를 비교해 읽는 어느 독자에게서 문의가 왔다. 1981년 판 ‘일본어 성서’ 잠언 11장 16절에는 “강포한 남자가 부를 얻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 말 ‘개역성서’의 같은 구절은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라고 되어 있어 너무나도 내용이 다르니 해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잠언 11장 16절은 세계의 성서 번역자들이 늘 고심해 왔던 구절 가운데 하나다.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 원문 히브리어 성서를 따라 읽으면 ‘일본어 성서’의 ‘강포한 남자’가 옳다. 영어 번역판이나 중국어 번역판들 중에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옳기려고 하는 번역들도 일본어역처럼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어표준개역(RSV)’은 “난폭한 남자(violent men)”, ‘새국제성서(NIV)’는 “무자비한 남자(ruthless man)”라고 하였고, 중국어의 한 역본은 “강포한 남자”로 번역하였다. 이렇게 번역하는 쪽에서는 자비스러운 여인은 존경을 받는데 난폭한 남자는 재물밖에는 못 얻는다는 뜻으로 읽어내려 한다.
우리 말 ‘개역성서’에서 “근면한 남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대응 단어 ‘아리침’은 본래 좋은 의미가 아니다. ‘아리침’은 폭력을 쓰는 남자를 말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 ‘아리침(강포한 남자)’을 ‘하루침(근면한 남자)’의 오기로 보는 견해도 많다. 우리 말 ‘개역성서’는 바로 이 후자를 따라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고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지혜문학에서는 ‘근면’과 ‘부’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현재의 문맥에서도 자비스러운 여인과 근면한 남자가 받는 보상을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른 번역들의 경우를 더 살피면, ‘공동번역성서’는 “부지런한 사람은 부자되게 마련이다”라고 하여 히브리어 ‘아리침’을 ‘개역성서’처럼 ‘하루침’으로 고쳐 읽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히브리어 원문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문맥을 고려하여 적절한 의미라고 생각되는 대응 낱말을 선택하여 번역한 예도 우리 말 성서 변역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1925년에 나온 게일 이원모 공역의 ‘신역신구약전서’에는 “유력한 남자가 재물을 얻는다”라고 번역 하였다. 유능한 남자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어 ‘아리침’의 반영은 아니다.
1966년에 영어로 번역되어 나온 ‘예루살렘성서(JB)’는 “진취성 있는 남자가 부자가 된다(men of enterprise grow rich)”라고 번역하였다. 이것 역시 히브리어 ‘아리침’의 문자적인 뜻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다만 문맥을 고려하여 문자적 의미를 확대하여 해석한 것이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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