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6)
일인칭을 가리키는 삼인칭
히브리어에서는 가끔 일인칭을 삼인칭으로 객관화시켜 진술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말의 경우에도 말하는 사람 자신이 자기를 객관화시켜 ‘이 아무개 ’라든가 ‘필자가’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주어의 인칭과 수에 따른 동사의 어미 변화가 없기 때문에 일인칭으로 말하는 이의 삼인칭 표현이 그 성격에 있어서 히브리어만큼 뚜렷하지는 않다.
구약성서(공동번역)에서 예를 들어본다. 출애굽기 20장 1-17절에서 십계명을 선포하는 이는 야훼다. 야훼 자신이 자신을 가리켜 ‘나’라고 하고 십계명을 받는 대상인 이스라엘을 ‘너’라고 부른다(20:1~6 ). 예를 들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두지 말찌니라라”(20;3).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나 여호와 너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하느님인즉”(20:4-5) 등에서 야훼 자신이 일인칭으로 나온다.
그러나 도중에 야훼는 자신을 삼인칭 ‘그’라고 언급한다. 예를 들면 “너는 너의 하느님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야훼는 그의 이름을(슈모)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20:7), “이는 엿새 동안에 야훼(삼인칭)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삼인칭) 제 칠일에 쉬셨음이라. 그러므로 야훼(삼인칭)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20:11) 등에서 야훼는 삼인칭으로 나온다.
이처럼 출애굽기 20장 7-11절에서 야훼는 삼인칭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일인칭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역성서>는 일찍이 십계명에 나오는 ‘그의 이름’은 ‘나의 이름’으로, 삼인칭 야훼는 ‘나 여호와’로 고쳐 번역하는 전통을 보여 주었다.
<개역성서> 예레미야서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예레미야 30:18),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예레미야 4:2)에 나오는 ‘나’는 모두 삼인칭을 일인칭으로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이러한 히브리어의 특유의 표현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아 독자들이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그러한 혼동이 일어날 경우라고 판단될 때에는 삼인칭을 일인칭으로 바꾸어 번역함으로써 혼동을 막을 수 있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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