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
절망의 산, 그 부박함을 넘어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려 한다’는 말이 있다. 2004년부터인가, 세 차례 중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의 신강(新講)지역으로 선교여행을 간 적이 있다. 서안에서 시작하여 란주를 거쳐 우루무치와 투루판, 카쉬가르를 거쳐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접한 타쉬쿠르간이라는 곳까지 해마다 비슷한 코스였다. 하계와 동계 방학 중 학생들을 모집해 실시하는 선교여행(비전 트립, 혹은 단기선교라고도 부른다)이란 대부분 선교사가 파견돼 있는 현지에 가서 봉사를 하거나 주변 지역을 답사하며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끔 뉴스가 되곤 하는 ‘땅밟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래 선교적 열정이 풍부한 사람도 못되고 비전 트립이나 땅 밟기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나의 관심은 ‘아무 때 먹어도 김가(金哥)가 먹을 밥’ 어차피 내게 주어진 기회를 사 학교와 학원에 지친 학생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조금이라도 세상과 자기를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견문을 넓혀주자는 것이었다.
첨언하자면, 선교가 명목일 뿐이었다는 고백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하나는 내가 계획한 선교 여행이 실은 선교를 명목으로 내세운 ‘허클베리 핀의 모험’쯤이었다는 것이고, 더 근원적으로는 선교 여행 자체가 교회의 행사로서 명목화된 프로그램 이상의 실질을 갖지 못한다는 다소 비관적 견해에서였다. 선교지(?)를 중국의 변방 실크로드로 정한 것도 나름 궁여지책의 절묘함이 있었다 여겨진다. 명목화된 기회를 오히려 살린다는 내심의 기쁨도 없지 않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는 나만의 속사연이 있다. 선교팀은 준비기간 동안 간단한 중국어와 위구르어 회화를 익혔다. 중앙아시아 역사가인 김호동 교수의 《황하에서 천산까지》(사계절, 1999)도 읽었다. 몇 개 분과를 나누어 위구르 족의 역사와 신강 지역의 지리 기후 풍속 등을 스터디했다. 체력 훈련겸 강화도 마니산을 등정하고 펜션에서 새벽까지 NHK 제작 장편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시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 스스로 영감을 키워 아이들에게 뭔가 줄 것이 있기를 기도했다.
말하자면 내가 이십 여명의 아이들을 끌고 거기까지 가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적도 없고, 다행이다 싶어 하는 나도 그랬지만, 바로 그 아무도 ‘여기 무얼 보러 온 것이냐’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내게 웃음을 유발한다. 그렇게 설레어하며 준비하고 찾아간 신강 땅에서 아이들이 만났던 그 길고 지루하고 일관성 있는 풍경이라니.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가보지 않고는 말을 하지 말일인 것이다.
그것은 시작부터 생뚱맞았다. 서안(西岸)에서 버스를 타고 황하(黃河)의 붉고 탁한 물이 굽이치는 절벽 길로 곡예 하듯 하룻길을 달리면 란주(蘭州)가 나왔다. 말이 하룻길이지 무려 10시간이다. 보이는 것은 왼쪽으로는 하늘로 치솟은 산과 절벽, 오른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 수천 년 지반을 깎아먹으며 노도와 같이 밀려 내려가는 황토물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하여 ‘야아, 저게 바로 그 유명한 황하다’ ‘야아, 저것 봐라. 가도 가도 끝이 없구나.’ 연신 설레발을 쳤는데, 그것인즉 척박한 사막지대의 돌무더기 산이거나 모래 산이거나 협곡과 절벽위에 간신히 계단식 농토를 일구어 경작하는 옥수수 밭이거나 밀 보리밭일 뿐이다.
(출처: Caitriana Nicholson (http://www.flickr.com/photos/caitriana/))
나는 또 무안해져서 ‘야, 저것 좀 봐라. 저기 저 옥수수 밭 사이 마을에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냐.’ 백양나무 그늘에 가려진 회족(回族) 동네의 메마른 흙집을 가리켜보였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잠깐씩 깨어나 그 풍경을 바라볼 뿐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흔들리는 차안에서 헤드뱅잉 중이었다. 게다가 어두워지자 그나마 볼 수 있는 풍경도 없어졌다. 점점 칠흑으로 변해가는 비포장 절벽 길을 버스기사가 그래도 절묘하게 찾아갔다.
아찔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불 없는 터널을 통과해 들어갈 때나 꺾이는 모퉁이를 돌아갈 때면 버스기사는 일단 ‘우리가 간다’하고 엄청난 경적을 길게 울리며 나가는 것이었다. 반대편에서 무엇이 튀어 나올지 그야말로 천운에 맡기는 러시안룰렛 게임 같았다. 인솔자로서 나는 ‘행여 여기서 사고라도 나면 내 인생도 끝장이로구나’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경적 소리에 아이들이 놀라 깨곤 했다. 그러면 나는 또 짐짓 너스레를 떨어보는 것이었다. ‘야아, 잠만 자지 말고 잘 봐두어라. 저게 바로 대륙을 달리는 중국버스기사의 등짝이란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을 아이들을 란주로 하하로 라브랑스로 끌고 다녔다. 우루무치에서 투루판을 거쳐 기차를 타면 꼬박 하루를 달려 카쉬가르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버스로 11시간을 달려 밤이 되면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마을 타쉬쿠르간에 도착했다. 그때쯤 이르면 아이들 중에는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거나 배탈로 먹지를 못하거나 고산증에 어지러워 움직이질 못하는 환자가 속출했다. 더 이상 히말라야의 웅혼한 설산(雪山)도 그랜드캐년 보다 더 깊고 웅장하다는 파미르의 거대한 산악도, 나 혼자 떠들어 보는 최후의 고구려인 고선지(高仙芝)의 위대한 정복과 오렐 스타인과 폴 펠리오의 세기적 도둑질도 ‘저게 뭔 생뚱맞은 소린가’ 의미 없는 광대 짓이 되는 것이다. 그 파미르 가는 길쯤에서 나는 버스의 짐받이를 붙잡고 통로에 간신히 선 채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불러 주었다.
오랜 시련에 헐벗은 저 높은 산 위로
오르려 애쓰는 군중들의 함성이
하늘을 우러러보다 그만 지쳐버렸네
산을 에워싼 강물은 유유히 흐르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저 높은 산에 언덕 넘어 나는 갈래요
저 용솟음치는 함성을 좇아갈래요
하늘만 바라보다 시들어진 젊음에
한없는 지혜와 용기를 지니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 <군중의 함성>(김의철, 작사곡) -
다시,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려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열아홉 살 무렵 전도사님에게 처음 배운 이 노래에도 산이 나온다. 모든 인류가 기어이 올라가 넘으려 애쓰는 산. 그 산이 하나님은 아니다. 그러나 산이 있는 곳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 산 앞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산 앞에서 하나님을 우러르고 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 산의 꼭대기엔 오로지 종교 이외엔 도달할 수 없고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생산해낼 수도 없는 오로지 종교만이 있는 것이지만, 그리로 올라가는 수억만의 길은 어쩌면 가장 비종교적이고 부박한 모든 인간들의 각개전투식 현실의 분투에 다름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실크로드 지방의 장족과 회족과 위구르족들의 슬픈 역사와 고단한 현실과 삶의 남루한 모습들을 기억해 주길 바랐다. 그 치열한 생존의 눈물겨움이 그들과 우리들의 산이고 그들과 우리들의 종교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한국 교회로부터 가져온 모든 종교적 형식들의 생뚱맞음과 우리들 자신의 생뚱맞음과 그 생뚱맞음의 어리석음을 어렴풋이나마 여기서 느끼게 되기를 바랐다. 그것으로 우리들의 알량한 종교와 위선이 치유되고 오히려 우리가 거기서 구원의 빛을 발견하기를. 어쩌면 그것은 전도사인 나를 위한 구원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데려간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과 우리들의 교회에서 내가 느끼던 절망의 산을 거기까지 끌고 갔던 것인지 모르겠다.
실크로드에 가서 보면 오아시스라는 말이 내포하는 풍성한 이미지들은 실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오아시스는 아주 작고 볼품없는 마을들에 지나지 않았다. 몇 그루의 나무와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인 것이 고작이다. 거기에는 현대의 오아시스를 표방하는 최첨단 세속도시들이 갖추고 있는 흥청거림과 퇴폐와 유흥이 섞여있는 호화찬란한 유혹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편>이 들려주는 낙원의 실상도 이와 같을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도 주변 상황의 척박함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들과 끈질기게 싸우려 할 때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질박한 비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싸웠기 때문에 조상들은 자손들에게 복을 유업으로 물려준다는 말씀을 살아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가장 종교적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이 복의 공공성을 자주 놓친다.
축복의 신기루를 쫓다가 사막의 미아로 사라지는 개인들을 만들어 놓는다. 비유의 원관념과 보조관념도 구별하지 못한 채 경전을 읽고는 알음알이로 삶을 벌써 다 살아버린다. 우리들 생의 모든 진지함을 다 바치면 겨우 그 밑에 도달하게 될까한 이 산을 몇 마디 힐링의 언어로 간단히 넘어 벌써 천국과 해탈의 오아시스에 짐을 풀라는 감언이설 호객에 자기를 맡겨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오로지 종교 외에는 그 무엇을 생각할 수도 생산할 수도 없는 이 피치 못할 현상의 종교로 인해 지금 어느 때보다 우리들의 종교는 너무 많이 지쳤다. 그 산을 넘어가려는 군중들의 함성조차 무디어져 들리지 않도록 까마득해졌다. 가끔 그때 실크로드를 함께 누볐던, 지금쯤은 시집, 장가도 갔을 제자들의 안부가 그립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불러 모아 카라부란(모래폭풍)이 부는 타클라마칸과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파미르의 협곡으로 데려가고 싶다. 하늘만 바라보다 시들어질 젊음일지라도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데,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천정근/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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