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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일과와 묵상노트

‘最少’도 내팽개쳐서야

by 한종호 2022. 11. 11.

 

*오늘의 성서일과(1111일 금요일)

 

시편 98, 이사야 12, 사무엘하 21:1-14, 이사야 59:1-15a, 데살로니가후서 1:3-12

 

*꽃물(말씀 새기기)

 

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이사야  59:12)

 

*마중물(말씀 묵상)

 

내년 섬기는 교회의 표어를 상식을 존중하는 교회라고 정했다. 누군가 내게 독서 모임 중에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했다.

목사님, 한국교회는 부흥을 이야기하기 전에 상식적이지 않은 일체의 일들을 회개하고 상식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 것을 먼저 해야 그나마 희망을 논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사정없이 내리치는 죽비였다. 왜 아니겠나 싶다.

3 이사야의 메시지는 거의 대부분이 희망을 노래하는 텍스트다. 구약 선생님이 언젠가 섬기는 교회에 와서 구약 톺아보기를 인도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세인교회 성도 여러분! 힘들 때 이사야 56-66장 가운데 아무 이나 열어 말씀을 읽으셔도 모든 구절이 은혜가 됩니다.”

희망의 노래, 재 구원의 노래로 점철된 제3 이사야의 텍스트가 그렇다. 헌데 이사야 59장은 조금 특별하다. 하나님의 신탁을 받은 나비’(예언)가 이스라엘의 죄악을 규탄하자, 즉각적으로 인정하고 죄를 토로한다. 여지없이 까발려진 내용에 대한 수치를 감수하고 공동체는 그들은 고백한다.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상식으로의 회귀였다. 그렇다. 이게 상식이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시인하는 것이 상식이다. 폼 잡고 다른 말로 변명하고, 수사여구나 갖고 있는 물리적 힘을 통해 부인하는 작태는 비상식을 넘어 몰상식의 차원이다. 다윗에게 서슬이 시퍼런 비수를 날렸던 나단의 말을 듣자마자 반응했던 다윗의 한 외마디가 필요한 시대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사무엘하 12:13 1f)

몰상식이 낳고 있는 작금의 상태는 참담하다. 주적인 욱일기가 나부끼는 일본 자위대에 앞에서 안중근 의사가 죽음으로 대변했던 그 기개를 송두리째 반납하는 제 2國恥를 맛보게 하지 않나, 지성의 비판을 인정하지 않고 확인사살을 하지 않나, 목숨을 걸고 불구덩이로 뛰어든 소방대원들은 토사구팽하고, 친위대는 목숨 걸고 지키는 최소한의 양심도 저버리는 자들이 지금 이 나라를 운영하고 있음에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을 다시 노래하고 싶은 마음 굴뚝이다.

最少도 내팽개쳐진 지금, 3 이사야의 외침에 자복했던 저들의 상식이 그립고 그립다.

 

*두레박(질문)

 

나는 상식을 존중하는 목사로 살고 있는가?

 

*손 우물(한 줄 기도)

 

하나님, 죄는 죄입니다. 선택적 기호가 아닙니다. 죄를 변호하거나 방어하지 않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나비물(말씀의 실천)

 

처절하게 내가 지은 죄를 토로하고, 그 죄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히브리서 저자의 말 그대로 그 죄와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자.

 

*하늘바라기(중보기도)

 

바울이 드렸던 이 기도가 뼈를 흔들게 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로마서 9:3)

하나님, 내게 이런 용기가 없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용기를 내 봅니다. 이 나라가 상식적인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적어도 몰상식이 정의로 변질되고 있는 재앙은 막아주십시오.

키리에 엘레이손!

 

이강덕/제천 세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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