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3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수난곡 2부 71~72번 마태복음 27:4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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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듣기 : https://youtu.be/2OGbIpLV6TQ?si=KtHa0KsHNC5AkLzv | |||
71(61) 내러티브 |
에반겔리스트 | 45. Und von der sechsten Stunde an ward eine Finsternis über das ganze Land, bis zu der neunten Stunde. 46. Und um die neunte Stunde schrie Jesus laut, und sprach: | 45.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
대사 | 예수 | 46. Eli, Eli, lama asabthani! | 46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내러티브 | 에반겔리스트 | 46. Das ist: Mein Gott, mein Gott, warum hast du mich verlassen? 47. Etliche aber, die da stunden, da sie das höreten, sprachen sie: | 46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
대사 | 어떤 이들 (합창) |
47. Der rufet dem Elias. | 47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
내러티브 | 에반겔리스트 | 48. Und bald lief einer unter ihnen, nahm einen Schwamm, und füllete ihn mit Essig, und steckte ihn auf ein Rohr, und tränkete ihn. 49. Die andern aber sprachen: | 48.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
대사 | 남은 사람들 (합창) |
49. Halt, laß sehen, ob Elias komme und ihm helfe ? | 49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
내러티브 | 에반겔리스트 | 50. Aber Jesus schriee abermals laut, und verschied. |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
72(62) 기도 |
코랄 | Wenn ich einmal soll scheiden, So scheide nicht von mir! Wenn im den Tod soll leiden, So tritt du dann herfür! Wenn mir am allerbängsten Wird um das Herze sein, So reiß mich aus den Ängsten Kraft deiner Angst und Pein! |
나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만 할 때 주여, 내게서 떠나지 말아 주소서! 내가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만 할 때 주여, 나를 맞이하여 주소서! 내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할 때 주여, 내 마음 감싸 주시고 고난을 그 이겨내신 능력으로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의 죽음을 준비하듯 에반겔리스트의 숨결도 매우 가라앉아 있습니다. 온 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9시, 오늘날의 시간으로 오후 3시 경이었음에도 누가복음의 표현처럼 해가 그 빛을 잃고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 어둠은 하나님의 아픔이었고 하나님의 진노였으며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던 예수는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는 예수께서 쓰셨던 아람어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번역되지 않은 예수께서 실재로 쓰신 언어 그대로라 생각하니 그 음성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 음성은 ‘거기 너 있었는가/Were you there’라는 찬송가처럼 우리를 골고다 언덕 그때 그 자리로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은 떨려옵니다(O sometimes it causes me to tremble! tremble! tremble!).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이 마지막 말씀은 시편 22편 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편 22:1
이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죽음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됨을 의미합니다. 둘째, 십자가에서 예수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고 그중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은 그 어떤 육체적인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셋째, 그럼에도 예수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놓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바흐의 이유 있는 일탈
바흐는 마태수난곡을 작곡하면서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원문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작곡가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바흐와 같은 해에 태어났던 헨델이 1741년에 작곡한 ‘메시아(Messiah HWV 56)’에는 이사야를 비롯하여 복음서, 바울서신, 요한계시록 등의 킹제임스와 커버데일 성경의 영어 구절들이 두루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절들은 찰스 제넨스(Charles Jennens)에 의해 대본화되고 헨델에 의해 음악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변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를 음악으로 살려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있었던 바흐는 천재적인 음악성과 특유의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그 놀라운 일을 해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흐가 근본주의적인 종교인이나 꽉 막힌 원칙주의자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전통과 원칙을 존중한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지만, 신앙과 음악의 본질에 있어서 보다 우선적인 이유가 있다면 기존의 것을 언제든지 혁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로운 예술가였습니다.
바로 오늘의 부분에서 마태수난곡에서의 유일한 성경 구절의 변형이 등장합니다. 1545년 루터 성경에는 46절 후반에 있는 해당 구절이 “Eli, Eli, lama asabthani”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바흐는 마태수난곡에서 우리말로 ‘왜’ 또는 ‘어찌하여’라는 의미인 ‘lama/라마’를 한 번 더 반복하고 있습니다. 바흐가 왜 그랬을까요? ‘왜?’라는 의문사를 반복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향한 예수의 항변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어지간한 이유로는 철저하게 지켜왔던 성경 말씀에 그대로 음악의 옷을 입히겠다는 그의 기조를 철회시킬 순 없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바흐는 매우 기발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베이스 성악가가 부른 예수의 음성 이후에 에반겔리스트가 그 해석을 독일어로 전할 때, 평소처럼 세코 레치타티보로 처리하지 않고 음높이만 조금 높여서 예수께서 부르짖었던 그 멜로디 그대로를 따라 하게 한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을 예로 든다면, 통역할 때 통역사가 원어의 뜻만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를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억양, 심지어 몸짓까지도 흉내 내어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 부분을 다시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숨을 죽이고 그 두 음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한 가지 문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아람어 원문의 문장과 독일어로 해석된 문장의 음절 수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구절의 아람어는 “Eli, Eli, lama asabthani”이며 독일어는 “Mein Gott, mein Gott, warum hast du mich verlassen?”입니다. 한눈에 보아도 아람어 원문보다 독일어 문장이 길고 음절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바흐는 음절 수가 적은 아람어 원문에 ‘라마’를 한 번 더 반복시킨 것입니다.
예수는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랑의 예수는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셨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하나님의 침묵과 어둠 한가운데 홀로 놓여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아픔이었습니다. 그 아픔이 그와 같은 절규로 터져 나온 것이고 바흐는 그 구절을 신앙적으로, 극적으로, 그리고 음악적으로 극대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으신 예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토록 처절하고도 의미 깊은 예수의 음성을 듣고도 사람들은 가십거리를 대하는 것처럼 수근거립니다.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그런데 그중의 한 사람이 예수께 연민을 느꼈는지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는 말을 쏟아놓습니다. 말이 아니라 배설에 가까워 보입니다. 인간의 추악함이 바로 이렇습니다. 앞서 시편 22편과 예수의 마지막 말씀이 연결되었듯이 이 장면 또한 십자가 사건이 성경에 응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20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시편 69:19~21)
예수께서는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그의 영혼은 떠나셨습니다. 그 마지막 소리는 어떤 소리였을까요? 바흐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습니다. 대신, 너무나도 조용하게, 너무나도 초라하게, 너무나도 외롭게, 마치 세상 그 무엇도 그의 죽음에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바흐의 음악 속에서 예수의 영혼은 육신을 떠납니다.
주여, 내게서 떠나지 말아 주소서!
사형 집행을 구경하던 이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났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모두 도망친 상태였고(마 26:56)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들만이 멀리에서 눈물을 감추고 숨을 죽이며 바라볼 뿐이었습니다(55절). 골고다 언덕에 적막이 감돕니다.
마태수난곡을 듣는 이들은 이 장면을 마주하면서 다시는 십자가 예수의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더이상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홀로 두지 않겠노라고, 그 곁에서 끝까지 함께 머무르며 십자가의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따르게 될 때 예수와 같은 고난을 당하게 될지라도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해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며 이 코랄을 노래합니다.
Wenn ich einmal soll scheiden,
So scheide nicht von mir!
나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만 할 때
주여, 내게서 떠나지 말아 주소서!
Wenn im den Tod soll leiden,
So tritt du dann herfür!
내가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만 할 때
주여, 나를 맞이하여 주소서!
Wenn mir am allerbängsten
Wird um das Herze sein,
내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할 때
주여, 내 마음 감싸 주시고
So reiß mich aus den Ängsten
Kraft deiner Angst und Pein!
고난을 그 이겨내신 능력으로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우리에게는 ‘오 거룩하신 주님’으로 잘 알려진 이 코랄은 ‘기도’에 해당합니다. 마태수난곡에서 이 코랄은 이번 순서를 비롯하여 21(15), 23(17), 63(54)번에서 총 네 번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멜로디의 찬송이지만 바흐는 장면에 따라 화성에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 쓰인 가사는 코랄 ‘O Haupt voll Blut und Wunden’의 9절 가사인데, 바흐는 조금씩 조금씩 줄어드는 숨소리와 떠나가시는 예수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서 반음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부드럽고 애잔하며 사라지는 듯한 느낌의 매우 섬세한 화성을 입혔습니다. 코랄 선율에 붙여 부를 수 있도록 우리말 가사를 다듬어 보았습니다. 유튜브 링크를 통해서 음악을 들으시면서, 이 코랄을 함께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떠나는 예수의 영혼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하여 이 노래를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현재 전농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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