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38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마태수난곡 2부 73a번 마태복음 27:5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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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듣기 : https://youtu.be/YAaIzsinyPo?si=o_6N2-szzMADfwD0 | |||
73a(63) 내러티브 |
에반겔리스트 | 51.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 51. Und siehe da, der Vorhang im Tempel zerriß in zwei Stück, von oben an bis unten aus. 52. Und die Erde erbebete, und die Felsen zerrissen, und die Gräber taten sich auf, und stunden auf viel Leiber der Heiligen, die da schliefen; 53. und gingen aus den Gräbern nach seiner Auferstehung, und kamen in die heilige Stadt, und erschienen vielen. 54. Aber der Hauptmann, und die bei ihm waren, und bewahreten Jesum, da sie sahen das Erdbeben und was da geschah, erschraken sie sehr und sprachen: |
대사 (합창) |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 | 54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 54. Wahrlich, dieser ist Gottes Sohn gewesen! |
바흐의 마감 시간
이미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마태수난곡의 후반부는 굉장히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을 에반겔리스트의 내러티브로 이어가고 있지요. 후반부로 이어질수록 작곡을 위한 시간이 모자랐을 수도 있고 전체적인 길이를 고려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설교자로서 저는 바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감과 아이디어가 넘쳐서 준비되는 설교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량이 주어진 시간을 넘어 버리기 십상이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쉬움을 머금고 서둘러 정리를 해야만 했던 적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작품보다 심혈을 기울여 작곡하고 있던 마태수난곡이 3/4 정도 완성되었을 때 바흐 역시 그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던 것 같습니다. 설교의 경우에는 분량을 나누어서 다음 설교 시간에 이어지도록 넘길 수가 있지만 수난곡은 성 금요일의 오후 2시, 한 번의 시간에 모두 연주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바흐는 많은 아이디어를 남겨 놓은 채로 마태수난곡을 갈무리해야만 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마태수난곡을 사랑하는 우리는 아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분한 시간과 분량을 두고 작곡했다면 적어도 두세 개 정도의 명곡이 더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흐에게는 늘 해야 할 일이 넘쳐났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바흐는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는 프리랜서 전업 작곡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서양 음악사 전체를 아울러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고작 그 지역의 전문 기술자 정도로만 여겨졌을 뿐이었습니다.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서 바흐는 매주 예배 음악 작곡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음악과 라틴어를 가르쳐야만 했고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일과 악단과 합창단의 지휘자 역할도 해야만 했습니다. 바흐 당시의 교회는 지역 사회의 거의 모든 일과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시의 행사나 결혼식, 장례식 음악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는 모차르트처럼 천재 대접을 받으며 작곡하는 일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로시니처럼 일찍 은퇴해서 삶의 여유와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베토벤처럼 생전에 거장 대접을 받으면서 신중하게 작곡할 수 있는 삶도 아니었습니다. 드보르작처럼 미국의 초빙교수가 되어 많은 위촉금을 받아가며 작곡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며, 말러처럼 여름 몇 달 동안 호숫가에 있는 숲속 별장에 머물면서 여유롭게 곡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바흐는 평생을 이름 없는 기술자요 교회의 시종으로서 엄청난 일을 했고 불평 없이 자신의 소명에 충성하며 묵묵히 살았습니다.
그의 죽음도 평생 밤늦도록 해왔던 악보 작업과 연관이 있습니다. 1749년 5월 뇌졸중으로 인해 시력이 크게 나빠졌던 바흐는 이듬해 봄에 존 테일러라는 영국 출신 돌팔이 안과 의사에게 백내장 수술을 두 번 받게 되었는데 증세가 더욱 나빠졌고 결국 1750년 7월 28일에 합병증으로 사망합니다.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바흐는 매우 가정적이어서 사별한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와 재혼한 안나 막달레나 뿐만 아니라 모든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했었습니다. 1727년 4월 11일 마태수난곡이 초연되었을 당시 바흐에게는 일곱 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바흐는 사별한 전처 마리아 바르바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세 명을 이미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었고 특히 한창 마태수난곡 작곡에 열을 올리고 있었을 1726년 6월에는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 크리스티아나 소피아 헨리에타가(1723~1726) 세 살의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애처가요 딸 바보였던 바흐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아픔과 슬픔의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마태수난곡 작곡에 더욱 열을 올렸습니다.
그 위대한 음악가의 고단한 인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이렇게 그의 삶을 생각하면 서둘러서 마무리되고 있는 듯한 마태수난곡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태수난곡은 이미 회화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비견될 정도로 서양 음악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그와 같이 무거운 인생의 십자가를 지고 있던 그의 삶 가운데서도 이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 바흐와 마태수난곡은 더 위대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다
에반겔리스트의 내러티브는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는 모습, 깨어나기 전 성도들의 자고 있는 모습이 오케스트라 반주를 통해 그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악보는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에는 ‘Und siehe da(그런데 보라)’라는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και ιδου(카이 이두)’라는 표현이 분명히 들어 있고 루터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이 표현은 복음서에서 장면이 전환되거나 중요한 사실을 언급함에 앞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 자주 쓰입니다. 악보를 보시다시피 바흐는 이 장면에서 ‘Und siehe da’라고 외치는 부분은 음표들이 급격하게 상행하여 눈을 들어보게 하고, 성소 휘장이 찢어지는 부분(der Vorhang im Tempel zerriß...)은 급격한 하행으로 표현함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모습을 살려냈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악보는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Und die Erde erbebete, und die Felsen zerrissen)’라는 대목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땅의 진동은 32분음표가 16개씩 반복해서 울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동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 악보는 ‘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viel Leiber der Heiligen, die da schliefen)’을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자고 있던’에 해당하는 ‘schliefen’이라는 단어가 지속될 때의 콘티누오 음을 보면 32분음표가 4개씩 묶여 반음으로 순차적으로 하향진행하는데 이는 스르르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흐는 어지간한 오페라와 맞먹을 정도의 드라마틱한 표현을 마태수난곡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마태수난곡의 하이라이트
보통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장면이나 순간’을 ‘하이라이트(Highlight)’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사진 용어로서 ‘피사체의 가장 밝은 부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백부장과 예수를 지키던 자들의 고백은 마태수난곡에서 이 두 가지 의미의 ‘하이라이트’를 모두 담아내고 있습니다. 마태수난곡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찬란한 부분이며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에서 스승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 베드로 일행처럼 이 부분을 듣는 우리도 그 찬란한 영광 앞에서 얼어붙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우리 음반의 지휘자 칼 리히터는 이 부분의 템포를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네 배 정도 더 느리게 표현해서 그 거룩함과 영광의 광휘를 최대치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분명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눈이 부셔올 지경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빛은 우리 눈으로 담아낼 수 없습니다. 밝은 빛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는 우리들의 시각적인 한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우리의 지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우리의 영적 한계 또한 드러냅니다. 우리는 고작 우리가 치열하게 경험하는 어둠의 상대개념 혹은 본연의 소망으로써만 빛을 인식할 뿐입니다. 창조주가 만든 태양조차도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지각적 한계입니다. 그러나 바흐는 우리로 하여금 그 빛을 ‘듣게’ 해 줍니다. 눈을 감고 ‘Wahrlich, dieser ist Gottes Sohn gewesen/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하는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각이 다 담아낼 수 없는 이 영화롭고 거룩한 하나님 아들의 광채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진실로(Wahrlich),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십자가를 통해 죽음을 이기심으로 영광 받으셨습니다.
조진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바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솔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감신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현재 전농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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