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유철의 음악정담(16)
‘1004’의 천사
일찍 출근해서 티보 노알리의 바이올린 솔로 음반을 틀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기계상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소리가 전혀 다르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몸이 소리의 음색, 잔향 등에 대해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내 오디오 시스템이 이런 소리였던가 싶을 정도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이유가 몸에 있네요. 주말의 휴식으로 몸의 상태가 나아지니 소리에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정신과 몸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음악을 듣는 행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지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독서할 때 음악이 방해가 된다는 고정 관념을 가진 분들은 음악 자체가 독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읽는 책과 선택한 음악의 부조화나, 책을 읽는 공간의 크기와 볼륨의 부조화, 그리고 자신의 몸이나 정신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레퍼토리를 선정했기 때문이 아닌지를 살필 일입니다.
음악의 세례를 원하면 목욕재계와 함께 자신의 몸의 피로도와 정신의 집중 정도 및 방의 사이즈를 고려하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청소를 깨끗이 하고 정리 정돈을 하고 난 후엔 분명 소리가 달리 들렸습니다. 노력 없이 거저 되는 게 없다는 평범한 진리는 음악 감상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커피 맛을 구별할 미감은 없으나 이런 맛을 두고 사람들은 격조 높다 하는구나, 라고 느꼈던 경험조차 없는 건 아닙니다. 핸즈 커피라는 대구의 커피 회사 강연 때 대표 이사 방에서 마셨던 커피를 잊지 못합니다. 그 두 커피 맛의 공통점은 입 안에 오래 남는 여운이었습니다. 30분이 지났는데도 입 안이 커피 맛이랄까 향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신기했습니다. 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게 격조 높은 커피냐 아니냐의 판별 기준은 '여운이 얼마나 오래, 그리고 향기롭게 남느냐'입니다.
띠보 노알리는 연주를 들을 때보다 연주가 끝나고 더 생각나는 사람입니다. 이미 그의 연주는 공기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음악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런 연주자 흔치 않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띠보 노알리는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 바로크 연주자입니다. 2006년부터 마크 민코프스키가 지휘하는 고악기 연주 단체, 루브르의 음악가들 콘서트 마스터로 활동하며 마테우스 앙상블, 풀치넬라, 콘서트 쾰른 등과 연주해 왔습니다.
이 음반은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입니다. 독일의 요한 파울 폰 베스토프,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토마스 발차, 하인리히 비버등의 작품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J.S 바흐의 1004란 작품번호(BWV)를 가진 무반주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연주가 좋습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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