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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

사랑의 거부(巨富)

by 한종호 2015. 4. 29.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18)

 

사랑의 거부(巨富)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창조하신 눈부신 피조물 가운데

사람의 영혼만큼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은

하늘나라에도 이 세상에도 없습니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고린도전서 2: 9).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그 일이 무엇인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내 경험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그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고 풍성한 생명을 주셨다’는 선언일 것이다. 이를테면, ‘복’의 선언이다. 엑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복덩어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덩어리로 지어졌다는 이런 자각은 ‘도상(途上)의 존재’, 길의 사람인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곧 ‘왕 같은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이런 자각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의 부자이다. 세속적인 시각에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흠뻑 누리는 진정한 부자이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찰을 달고 있으면서도, 인간을 돈에 종속시키는 자본주의 문명에 함몰되어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은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자신이 사랑의 거부(巨富)이신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시로 읊고 있다.

 

나는 길 저편 그늘진 곳에 살면서

내 이웃의 햇볕 가득한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네.

나는 언제나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므로

이 문에서 저 문으로

배고픔을 구걸하고 다닌다네.

사람들이 그들의 풍성함 속에서 아낌없이

나에게 더 많이 주면 줄수록

나는 점점 더 내 동냥그릇이 허전하다고 느끼네.

어느 날 아침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누군가가 나의 문을 두드리면서

구걸을 청해 왔네.

절망에 싸여 장롱을 열자,

그 속에 쌓여 있는 엄청난 보물을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자이다. 그것을 분명히 자각하려면, 시인처럼 우리 내면의 장롱을 활짝 열어젖혀 보아야 할 것이다. 보물로 가득한 내면의 장롱을 방치한 채 바깥으로만 쏘다니며 구걸하다 보면, 자신이 백만장자라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감싸주시는 생기로 충만한 채 생의 길을 가려면, 바깥으로만 향하는 우리의 눈길을 자주 우리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내면의 왕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 친밀한 관계는 우리가 길 위의 사람으로 사는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 무려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고대의 의인 에녹처럼!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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