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19)
살아 있는 성전
하나님의 형상이자 그분과 똑같은 모습의 영혼을 가진
우리는 새로운 성전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후배 채희동 목사의 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당시 채희동 목사는 온양의 한 가난한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성전 건물이 너무 낡아서 헗고 다시 세우기로 교우들과 뜻을 모았다. 마침 그는 자기가 쓴 책을 출간하여 인세로 받은 돈 1,000만원이 있어서 그걸 교회에 건축비로 헌금했다. 물론 당장 성전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지만. 그는 그 돈을 성전 건축을 위한 종자돈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무렵 새로 나온 교우 중에 형광등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이가 고관절이 망가져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걸을 수도 없을 지경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있었지만, 병원비가 없어 수술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에만 누워 있었다. 채 목사는 그 교우의 딱한 형편을 보고 이런 결심을 했다.
‘성전을 짓는 일도 귀하지만,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 저 아픈 교우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그 동안 모아진 헌금으로 먼저 교우를 살리고 보자!’
채 목사는 성전을 지으려던 돈을 가지고 고통 받는 교우를 찾아갔다. 그리고 교우에게 돈을 내놓고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교우는 처음엔 완곡히 거절했으나 채 목사의 거듭된 설득과 진심어린 마음을 알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
며칠 뒤 그 교우는 수술을 받고 난 뒤에 채 목사에게 이런 가슴 아픈 고백을 들려주더란다. 사실은 목사가 찾아오던 날 밤에 자살을 하려 했었다고!
몇 년 뒤, 채 목사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부인 이진영 목사가 남편 채 목사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그 교회를 섬기고 있다. 아직도 새 성전은 짓지 못하고 여전히 그 낡은 성전에서!
하지만 오늘 우리 가운데는 눈앞에 ‘살아 있는 성전’을 돌볼 생각은 않고 화려한 건물을 세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의 자비에 눈먼 삯꾼들이다.
자신의 영혼이 자비로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고통 받는 이웃이야말로 곧추세워야 할 성전에 다름 아니리라.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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