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17)
실바와 빌하, 조용히 어머니로만 살다(2)
1. 들어갈 때 다르고 나갈 때 다른 게 사람이란다. 레아도 그렇고, 라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라헬은 요셉을 낳기 전까지는 빌하가 낳은 두 아이들을 통해서 한풀이를 하는데, 요셉을 낳고서는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말한다. 라헬은 빌하가 단을 낳았을 때, 자신이 단을 출산한 것처럼,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고 제 심경을 토로했다. 그리고 빌하가 납달리를 낳았을 때도 자신이 출산한 것처럼,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고 자랑스러워한다.
2. 이처럼 레아와 라헬은 그들이 자녀를 출산하지 못할 때에는 자신들의 시녀들을 통해서 출산 경쟁을 지속하면서 시녀들이 낳은 아이들을 제 자식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막상 자신들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시녀들의 자식들을 제 자식이 아닌 시녀들의 자식으로 되돌려주는 비열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어머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실바와 빌하. 그들은 과연 야곱에게, 그리고 레아와 라헬에게 무엇이었을까?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과 사이가 틀어져서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야곱은 그것을 라헬과 레아와 의논한다.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때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창세기 31:4). 자신들도 포함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단순히 여주인들의 시녀이던 때와 달리 야곱의 아이들을 출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바와 빌하는 전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야곱, 레아, 그리고 라헬이 보기에 그들은 여전히 시녀일 따름이었던 것이다.
4. 야곱은 라반과 논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창세기 31:41). 야곱이 라헬에게 빠져 있을 때 그는 레아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바와 빌하를 통해서 아이들을 넷이나 낳으면서도 그들을 예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5. 원래 야곱과 레아, 그리고 라헬이 이루는 삼각관계에 엑스트라로 끼어든 실바와 빌하는 야곱과 레아, 라헬이 그들의 자리를 정확하게 잡아주지 않아서, 제 자리를 어디에 잡아야 할지 몰라 항상 애매하게 처신해야 했을 것이다. 라반은 야곱과 상호불가침 약속을 하면서, “만일 네가 내 딸들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창 31:50)고 강하게 경고한다. 라반이 하는 말을 살펴보면, 실바와 빌하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은 있으면서도 없는 것과 같은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6. 허깨비 같은 실바와 빌하.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창세기 31:55). 라반이 입을 맞춘 손자들과 딸들은 누구였을까?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실바와 빌하,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은 여기서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7. 야곱과 레아, 그리고 라헬이 실바와 빌하,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장면으로 가보자. 야곱을 에서를 만나러 가면서, 에서가 그들을 공격할 것을 두려워해서, 사람들과 가축들을 두 떼로 나눈다. 그래서 한 떼는 당하더라도 다른 한 떼는 피할 수 있게 했다(창세기 32:7). 그런데 막상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자, 야곱은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었다(창세기 33:1-2). 이런 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맨 앞에 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야곱이 보기에 실바와 빌하,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은 그리 소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8. 그리고 야곱이 에서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다음, 아내들과 자식들로 하여금 에서에게 인사를 하게 하는데, 이 때 순서 역시 여종들과 그의 자식들, 레아와 그의 자식들, 라헬과 요셉 순으로 나가서 인사를 했다(창세기 33:6-7). 하찮은 것들로 시작해서 귀중한 것으로 나아가는 이 냉혹한 배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기자는 실바와 빌하,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9. 그리고 성경기자는 야곱이 낳은 열두 아들들을 전체적으로 열거하면서, 레아의 여섯 아들, 라헬의 두 아들, 그리고 라헬의 여종 빌하의 두 아들, 레아의 여종 실바의 두 아들 순으로 소개한다(창세기 35:23-26). 정말 실바와 빌하는 누구인가? 레아와 라헬의 여종인가 아니면 야곱의 아내인가? 창세기 35장에서는 첩이라고하고, 37장에서는 아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창세기 37:2). 요셉이 꾼 꿈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세기 37:9)라고 하는데, 여기서 해는 야곱을 가리키고 열 한 별은 요셉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을 가리킨다면, 달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라헬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레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바와 빌하는? 요셉은 그들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10. 성경기자는 근친상간이 발생한 것을 기록한다.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창세기 35:22). 야곱이 그 이야기를 듣고 즉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열 두 아들들에게 유언을 하면서 그 사건을 언급한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 49:3-4). 하지만 그 이전에 야곱은 레아와 라헬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경쟁을 조절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이들을 낳고 이름을 짓는 데에도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라헬이 지은 베노니라는 이름을 나중에 베냐민으로 바꾼 게 유일하다. 레아와 라헬이 치열하게 출산 경쟁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실바와 빌하,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관심도 없이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둔다. 참으로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무관심과 무책임이 인간관계를 아프고 고통스럽게 만드는데 말이다. 두 자매가 벌이는 치열한 경쟁에 제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엑스트라로 불려와, 끝까지 침묵해야 했던 두 여인, 두 어머니, 실바와 빌하가 눈에 밟힌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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