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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다말, 모권(母權) 싸움에서 이기다(2)

by 한종호 2015. 5. 2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19)

 

다말, 모권(母權) 싸움에서 이기다(2)

 

 

1. 어머니 다말. 다말이 원했던 것은 여러 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말은 어머니가 되기를 가장 원했다. 다말처럼 어머니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다말의 소원만은 아니었다. 남편인 엘도 원했을 것이고, 엘 사망 후에는 시아버지 유다와 주위 사람들도 다말이 아이를 출산해서 엘의 대를 잇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유다가 다말을 친정으로 되돌려 보냈기 때문에, 다말이 어머니가 되는 길은 더욱 멀어 보인다.

 

2. 하지만 다말은 어머니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성경기자도 다말을 포기하지 않는다. 성경기자는 다말이 어머니가 되는 과정을 상당히 상세하게 꼼꼼하게 서술한다. 독자들이 읽기에 꽤 부담스럽고 불편한 장면들도 서슴없이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그 일은 한 여인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 사람은 유다의 아내였다. 엘과 오난, 두 아들이 죽었을 때, 어머니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유다와 그의 아내가 슬퍼했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성경기자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그 아픔을 상상하게 한다. 묵묵히 참척의 아픔을 견뎌온 여인. 유다의 아내, 엘과 오난, 그리고 셀라의 어머니는 그저 수아의 딸로 알려져 있다. 유다의 아내, 세 아들의 어머니, 수아의 딸, 그가 죽었단다(창세기 38:12).

 

 

 

 

3. 장례 기간을 마치고 유다는 친구인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으려 딤나에 갔다. 이 소식을 다말이 전해 들었다. 다말은 친정으로 돌아간 다음, 시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데도 연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말은 아직 유다의 며느리인데 말이다.

 

4. 다말은 사태를 파악하고 나름대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어머니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세밀한 계획을 세워놓았다. 다말은 기회를 엿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다가 딤나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다말은 유다가 그곳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그 동선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었다. 당시에 자신이 과부임을 알려주는 그런 의복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다음 얼굴을 가리고 몸도 감싸서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게 했다. 그런 차림으로 유다가 지나갈 에나임 문으로 가서 앉아 있었다. 그런 차림으로 그곳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창기로 여겼던 모양이다. 성경기자는 다말이 이렇게 행동하는 까닭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창세기 38:14). 다말이 하는 행동이 전혀 비난받을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말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다말은 셀라가 장성해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유다에게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셀라와 동침해서 아이를 낳아 엘의 대를 잇게 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다는 들은 척 만 척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유다는 다말을 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히려 다말이 연락을 취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다. 다말은 유다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셀라와 동침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다말은 이렇게 어머니 되기 위한 치열함을 보인다.

 

6. 다말이 예상했던 대로 유다는 그곳을 지나가다가 다말을 보는데, 창기라고 생각했을 뿐, 그가 며느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이런 점에서 유다는 근친상간을 한 것은 아니다. 유다가 동침을 요구하자 다말은 그에게 대가를 요구하는데, 유다는 나중에 염소 새끼를 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다말은 그것을 믿을 수 있게 담보물을 달라고 한다. 그러자 유다는 담보물로 무엇을 받기를 원하는지 묻는다. 다말이 요구하는 담보물은 유다의 도장, 허리끈, 그리고 지팡이였다. 누가 보아도 유다의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증표를 다말은 요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말은 매우 치밀하고 적극적이다.

 

7. 유다로부터 보증증표를 받고 그와 동침한 다말은 임신을 한다. 성경기자는 다말이 집으로 돌아가서 과부의 옷으로 다시 갈아입은 것도 언급한다. 참 꼼꼼하다. 집으로 돌아간 유다는 친구인 아둘람 사람 히라를 통해서 다말에게 염소 새끼를 전하고 맡겨놓은 보증물들을 되찾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히라는 유다가 말한 창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성경기자는 히라가 창기를 찾아다니는 장면도 꽤 상세하게 기술한다. 히라가 그곳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확인한 결과 그곳에는 창기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유다에게 전한다. 유다로서는 황당할 노릇이었다. 유다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자기에게 접근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말일 것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던 듯하다. 여전히 다말은 유다의 안중에 없었다. 그래서 일이 잘못되면 망신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쉬쉬 한다.

 

8.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다. 유다는 다말이 임신했다는 황당한 소식을 듣는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다말이 행음했다고 한다.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창세기 38:24). 그 소식을 들은 유다는 다말을 끌어내서 불사르라고 한다. 당시 그런 ‘명예 살인’의 관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시아버지, 그 권위가 대단하다. 어쨌든 사태는 아주 급박하게 돌아간다.

 

9. 화형을 당하기 위해 끌려나온 다말은 사람을 보내서 도장, 허리끈, 그리고 지팡이를 유다에게 보여주게 한다. 유다는 그것을 보고 자초지종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창세기 38:26). 이렇게 위기로 치닫던 다말 임신 사건은 일단락된다.

 

10. 드디어 출산. 성경기자는 다말이 출산하는 장면도 상세하게 매우 코믹하게 서술한다. 다말은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손이 먼저 나와서 거기에 홍색 실을 묶어준다. 나중에 구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손이 다시 들어가고 다른 녀석이 먼저 나왔다. 그 모습을 산파는 터트리고 나온다고 해서 “베레스”라고 불렀다. 아이 이름을 산파가 지은 것이다. 그리고 홍색 실을 묶은 아이는 세라라고 불렀다. 어머니 되는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인 다말. 다말은 이렇게 어머니가 되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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