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0)
예수의 심란한 마음
“인자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 지금 제 영혼이 몹시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릴까요?”(요한복음 8:1-11)
안드레와 빌립이 헬라계 백인을 데려오자 예수께서는 놀라신다. 무슨 예감이 드셨는지 모르지만 “결단의 시간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다. 어차피 양자택일하는 것이 인생이기는 하나….
자연에도 법칙이 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는다.” 옳은 말씀이다. “그래 옳거니! 너희들 다 죽어 다오, 너희를 밑거름 삼아 내가 무럭무럭 자라나 백 배도 천 배도 결실을 낼 터이니.” 그런데 예수님의 삶은 이러한 자기 보존의 법칙을 무시한다. “이 세상에서 제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보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누구를 진정 사랑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참으로 사랑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가난해야 하고 가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결국 제 목숨을 내놓아야 하니. 당신 역시 이런 운명이 달가울 리 없었다.
“지금 제 영혼이 몹시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릴까요?” 당정협의회에서 당신에게 이미 내려진 사형선고! 남은 것은 요식행위뿐이었다. 야간 체포, 야간 재판, 사형 집행 단 하루면 다 해치울 사람들이었다. 당신은 서른 셋의 한창 나이인데….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버티신다. “아니, 저는 바로 이 시간을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아아, 사업에 실패하고 몸져누운 남편을 바라보며 이렇게 뇌일 수 있는 여인은 행복하여라! 학교와 직장과 미래를 깡그리 빼앗기고 투옥당해 이 구절이 떠오르는 젊은이는 행복하여라! 하느님과 타인에게 봉헌된 한 생애가 무참히 실패로 끝장났다고 서러워할 때 이렇게 기도하는 이는 행복하여라!
하지만 주님의 운명은 왜 이리 비극적이었나? 종교에도 근간이 있는 법인데 그분이 하필 이 근간을 손상시키셨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만 들자. 안식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성당에 가서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복을 받아야 하니, 성당에 와 있는 우리는 선량한 사람이고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와 한푼 더 벌겠다고 가게를 열어 놓은 사람은 한심스럽고 죄스럽다고 믿는 우리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일이 사람 쉬라고 있는 것이지 사람이 주일 지키자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는 말씀을 서슴지 않으셨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는 그분을 미워하였다. “일주일이 이레나 되는데 그 동안 뭐하다 하필 성스러운 일요일에 병신을 고치고 정의 따위를 설교하고 사회불의를 고발한답시고 이 성스럽고 복된 날을 망치는가 말이다.”
성염/전 교황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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