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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by 한종호 2015. 6. 11.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1)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분은 예언자입니다.”

“우리가 알기로 그는 죄인이오.”(요한복음 9:1-38)

 

제목으로 쓴 글귀는 종교화가 루오의 화집 <미세레레(MISERERE)>에 나오는 어느 그림의 제목이다. 요한복음 내용에 맞춘다면 “눈먼 이가 보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여주었다”고 바꿈직하다.

참으로 성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다.

 

“당신이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할멈, 이게 당신 아들 틀림없어?”

“그렇습니다만.”

“소경으로 태어났다 이 말씀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만은 틀림없읍죠.”

“영감, 당신 아들이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말짱한 거야?”

“글쎄요… 나이가 있으니 본인한테 물어 보시지요.”

 

“여봐, 당신 어떻게 눈을 떴나?”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개어 눈에 얹어 주시고는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씻었더니…”

“하, 우선 무면허 의료 행위로 걸고… 그런데 그게 언제야?”

“그젭니다.”

“그 사람 하필 왜 안식일에 그따위 짓을 하고 다녀?”

“예?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안식일도 안 지키는 작자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당신, 그 작자를 뭘로 봐?”

“예언잡니다.”

“예언자 좋아하시네. 그 사람은 죄인이야.”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소경이었다가 지금은 눈을 떴습니다.”

“그 새끼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어?”

“아니 왜 자꾸 같은 걸 묻습니까? 그분 제자라도 되실 생각입니까?”

“이게 누굴 놀려? 너나 그 새끼 제자 되라. 우린 모세의 제자야. 그 새끼는 어디서 온 놈인지도 모른단 말이야. 수상한 놈이야.”

“그분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시지 않았다면 소경을 눈뜨게 하실 수 있을까요?”

“어라… 너 이 새끼 누구한테 설교하는 거야? 여봐, 김실장, 이 거지 새끼들 밖으로 쫓아내버려!”

 

 

               루오/때로는 눈먼이가 보는 이를 위로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공작 선거 대책회의를 회상해 보자. 국가 기관과 기관장의 선거 음모가 어떻게 해서 매춘 언론과 충견 검찰의 조작을 거치게 되었는지를 기억해 보자. 태생 소경이 눈을 뜬 기적은 온데 간데, 없고 “안식일에 기적을 행했다”는 사실만 꼬집어 예수를 죄인으로 몰아가는 터무니없는 시비만이 남아 있는 그 변질 과정에 납득이 간다.

 

게다가 이 사안이 선거판을 뒤집어 놨음을 기억해 보자. 나사로의 부활을 보고서 예수를 처형하기로 결정한 예루살렘 기관장 회의는 백분 이해된다.

 

독일 나치가 친위대원, 생체실험자, 고문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학살자에게 가르치는 첫째 수칙이 있었다. “희생자의 눈을 절대로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악에 물들면 제일 먼저 사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진실 역시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사람은 잠시라도 진리의 빛 속에서 거닐지 않으면 당장 어둠 속에 빠지게 마련이다. 어둠 속에 오래 오래 머물수록 눈이 먼다. 악을 행하면서도 악을 악으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리고 만다. 어둠이 그 눈을 빽빽하게 채워서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제 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실에 무관심한 자는 제아무리 세례명을 지니고, 주일미사에 나가 교무금을 바치고, 사도위원에 명단을 올려도 실제로는 ‘무신론자’이다. 우리 주변 성당 안에도 반공이니 안보니 하는 악마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지방색에 기인한 까닭 없는 증오에 물들어, 제 손아귀에 쥔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젖어, 사실도, 진실도, 진리도 안중에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과 금력과 안전을 하느님 위에다 섬기는 우상숭배로 사람이 눈을 멀게 되면, 입으로는 그리스도 신자이지만 자신의 권력과 돈과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은 그냥 두지 않겠다고 이빨을 갈고 덤비고야 만다.

 

“진실을 은폐함은 허위를 홍보함과 같다”(suppressio veri expressio falsi)는 옛 로마인들의 속담이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심판하러 왔습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게 하고 보는 이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담한 이 마지막 말씀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진실이 우리 양심에 던지는 선언이기도 하다.

 

성염/전 교황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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