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2)
유대인의 장막절(1)
우리 식구는 이스라엘 유학 시절의 대부분을 ‘길로’라는 동네에서 보냈다. ‘길로’는 예루살렘 남부, 해발 800미터의 구릉지대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어느 집이든 네 평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의 베란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던 3층 아파트에도 베란다가 있었는데, 가끔 고기를 구워 먹기에 좋았다. 모든 아파트는 아래층이 위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설계되어 있었다. 1층이 가장 넓고, 2층은 3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고, 3층은 또 4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건축되어 있었다. 베란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설계에 철저하게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이든 그곳에 누우면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어느 아파트 주민이든 영공 소유권(?)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밤이면 가끔 베란다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헤곤 했다. 이따금 베란다에 앉아 예루살렘 서쪽으로 지는 낙조를 구경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낭만일 것이다.
그러던 중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 가운데 하나인 장막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장막절이 제일 먼저 찾아온 곳은 다름 아닌 아파트의 베란다였다. 장막절이 가까워지자 집집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나뭇잎으로 지붕을 장식하고, 과일들을 걸어 놓는 등 장식을 하며 베란다마다 멋진 초막이 들어섰다. 그제서야 왜 아파트에 베란다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막절에 초막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유대법은 큰 나무 밑이나 다른 건축물 밑에 초막을 짓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초막에 누웠을 때 초막 지붕으로 꾸민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장막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집 뜰에 초막을 만들고, 일주일 동안 그 안에서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한다.
우리가 살던 ‘길로’의 아파트 단지에 있던 그 무수한 베란다들은 마당이 없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초막을 지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었다. 일주일간의 초막 생활을 통하여 유대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겪었던 장막 생활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그럼 장막절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장막절의 유래
장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 또는 The Feast of Booths)은 초막절이라고도 부르며, 히브리어로 ‘쑤콧’이라고 부른다. ‘쑤콧’은 우리말로 초막 또는 장막을 뜻한다. 장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삼대 절기 중의 하나로 고대에는 이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었다. 따라서 장막절은 ‘여호와의 절기’ 또는 단순히 ‘절기’라고 불렀다. 절기 중의 절기였기 때문이다. 가을 축제인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에 시작하여 일주일간 지속된다. 태양력으로 티슈리월은 보통 9월이다. 첫날은 일이 금지된 완전한 휴일 ‘욤 토브’로 지키며, 나머지 나은 일이 허락된 반 공휴일로 지킨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첫째 날과 둘째 날을 ‘욤 토브’로 지킨다.
장막절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역사적 요소요, 둘째는 올리브와 포도 등을 추수하는 수장절을 지키는 농경적 요소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막절과 수장절은 같은 명절이다. 이는 유월절이 곧 무교절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이스라엘 농부들은 일 년에 세 번 추수하며, 이 추수기들이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을 이르고 있다. 겨울 보리를 거두는 무교절 혹은 유월절, 여름 보리와 밀을 거두는 맥추절 혹은 칠칠절, 올리브와 포도를 거두는 수장절 혹은 장막절이 그것이다. 그럼 왜 모든 절기들이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농경적인 요소와 역사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겨울 보리를 추수하고 묵은 누룩을 없애는 무교절이,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절기가 유월절이다. 또 여름 보리와 밀을 거두는 추수 감사와 성격이 강한 맥추절이 시내 산에서 계명을 받은 역사적 사실과 결합된 것이 칠칠절이며, 일 년 중 마지막 추수를 축하하는 수장절과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결합된 것이 장막절이다.
예수님 당시의 장막절
예수님 당시의 가장 큰 명절은 유월절과 장막절이었다. 삼대 절기의 하나였던 칠칠절은 유월절과 장막절에 비하여 그 중요성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이는 명절은 유월절이었지만 장막절에도 그에 못지않은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유월절에 비하여 장막절은 보다 더 자유롭고 들뜬 분위기였다.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평생에 한 번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소원이었다. 성지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유월절이나 장막절 중 하나를 택하여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다. 그러나 예루살렘 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를 다 지켜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근교인 ‘루드’라는 동네는 장막절이 되면 동네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남지 않아 동네 전체가 죽은 듯이 조용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기 때문이다. 유월절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가장 많았던 곳은 바벨론이었다. 유월절이나 장막절이 되면 바벨론에 사는 유대인들만도 수천 명씩 무리를 지어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바벨론의 ‘나하르테아’ 또는 ‘니시비스’에 모여 카라반을 구성한 뒤, 무리를 지어 예루살렘 순례의 길을 떠났다. 모든 유대인들은 성전에 바칠 성전세를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성지순례를 못하는 다른 유대인들의 성전세까지도 대신 가지고 길을 떠났다. 보통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이 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예루살렘이 가까워지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합류하게 되어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지중해 연안에 살던 유대인들 중에는 배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중 부자들은 마차를 타고 오고, 어떤 이들은 당나귀나 낙타를 타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걸어서 왔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걸어서 하는 성지순례를 가장 영예롭고 값진 것으로 여긴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과 동시대의 인물로 유명한 랍비 힐렐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걸어서 순례했다고 한다.
농부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월절이나 칠칠절보다 장막절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기에 더 편했다. 유월절이나 칠칠절에는 보리나 밀 수확으로 집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반면, 올리브와 포도 추수가 끝난 후인 장막절에는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있었으며, 보통 10월중에 새로 파종하기 전까지는 비교적 한가했기 때문이다.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티슈리월 15일에 시작된다.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가 된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모든 과일을 추수하고 포도를 수확하여 포도주를 만들어 저장하는 시기다.
신명기는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라고 명령한다. 온갖 곡물과 과일들을 추수한 후 유대인들은 추수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장막절을 축하했다. 그러나 이 기쁜 추수의 계절에 유대인들은 옛날 그들의 선조가 광야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잊지 않기 위하여 초막을 짓고 고통스러웠던 광야 생활을 재현한다.
장막절의 의무와 ‘아르바 미님’
장막절을 지키는 방법은 레위기 23장 39-43절을 따른다.
“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 월 십오 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 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의 여호와니라.”
이 말씀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장막절이 되면 두 가지 사항을 지킨다. 첫째로 일주일 동안 초막에 거주한다. 레위기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일주일 동안 초막에서 먹고 잔다. 유대법에 의하면, 먹는 것만 의무이고 자는 것은 의무가 아니지만 대부분을 초막에서 자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혹 비가 오더라도 약한 비 정도는 참으며 식사를 강행하지만 장대비가 쏟아질 때에는 실내로 자리를 옮긴다. 디아스포라의 경우 지역에 따라 비가 많이 오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이시기에 비가 오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또 아주 추운 지역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식사만 장막에서 하고 잠은 실내에서 자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장막에서 자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둘째로, 장막절이 시작된 첫날에 “아름다운 과일 실과와 종려나무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하나님 앞에 칠 일 동안 줄거워하라”는 명령을 지킨다. 레위기는 여기서 네 가지 식물을 언급한다. 랍비들은 이 네 가지 식물을 가리켜 ‘아르바 미님’이라고 부른다. ‘네 가지 종류’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아름다운 과실실과는 레몬 비슷한 실과인 ‘에트로그’이고, 무성한 가지는 ‘도금양 나뭇가지’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네 가지 식물이란 이 두 가지 외에 종려나무 가지와 버드나무 가지를 합한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에는 감람나무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느헤미야서에는 버드나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느헤미야서에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초막의 지붕을 덮는 나무들로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랍비 전통은, 네 가지 식물을 레위기의 전통에 따라 아름다운 실과(Etrog), 종려나무 가지(Lulav), 도금양 나뭇가지(Hadass), 버드나무 가지(Arava)로 규정하였다. 성전 시대의 유대인들은 장막절이 되면 모두 ‘아르바 미님’을 손에 들고 성전에 나가 장막절을 축하했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모든 유대인들은 일주일 동안 ‘아르바 미님’을 들고 다니며 파괴된 성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카이의 이 가르침은 오늘날 유대인의 전통이 되어 해마다 장막절이 되면 모든 유대인들이 ‘아르바 미님’을 들고 다니며 파괴된 성전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아르바 미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가장 오래 된 해석은 이 네 가지의 식물이 비를 기원하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비가 없으면 이 네 가지 식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비가 없다면 온 세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해석은 이 네 가지 식물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다. 유대인 가운데 유행하는 해석을 하나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네 가지 식물은 네 종류의 유대인을 대표한다. 아름다운 실과(Etrog)는 맛도 있고 향도 있으므로 토라(하나님 말씀)를 알기만 할 뿐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종려(열매)는 맛은 있으나 향은 없으므로 토라는 알지는 못하지만 선을 행하는 유대인을 대표한다. 마지막으로 버드나무는 맛도 없고 향도 없으므로 토라를 모를 뿐 아니라 선도 행하지 않는 유대인을 대표한다. 또 종려나무는 척추를, 아름다운 실과는 심장을, 도금양 나무는 눈을, 버드나무는 입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장막절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릴 때 시편의 할렐송(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 시편 113-118편)이 울려 퍼지면, 유대인들은 각 시편의 25절을 읊을 때 ‘아르바 미님’을 흔든다. 이때 종려나무 가지는 오른손에, 도금양 나뭇가지 세 개와 버드나무 가지 두 개, 에트로그 한 개는 왼손에 든다.
최명덕/건국대학교 교수, 조치원성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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