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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

‘과거’ 이데올로기

by 한종호 2015. 7. 30.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30)

 

‘과거’ 이데올로기

 

 

해마다 두 차례, 여름과 겨울이 오면 강남 코엑스는 고등학생과 그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바로 수시와 정시를 위한 입시 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매년 백여 개 이상의 4년제 대학과 10만 명 가까운 수험생과 그 가족이 이곳을 방문한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생부를 든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자기 성적으로 입학 가능한 학과가 무엇인지를 상담하게 된다. 2015년도에도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수시입시박람회가 진행되었고, 총 137개의 대학이 참석하여서 열띤 홍보전을 벌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입시 과열은 정평이 나있다. 이런 행사도 그런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노린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런 입시에의 과열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가? 아무래도 우리는 과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조선시대를 지탱하던 과거라는 시험 시스템을 가벼이 취급한다. 그저 그런 많은 국가시험들 중의 하나이거나, 혹은 흔해빠진 국가공무원 선발 시스템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란 제도는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아니 과거 제도야 말로 조선이라는 왕정을 유지토록 해준 최고의 공신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교의 근본덕목이랄 수 있는 ‘입신양명’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과거라는 제도이다. 따라서 조선의 통치자들은 이 시험의 문호를 특정계층 외에는 모두에게 개방하여, 적절히 백성들의 출세에의 욕구를 조절하여 자신들의 통치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기를 수백 년, 아니 958년 고려 광종 9년에 처음으로 과거를 시행했으니 그것으로부터 치자면, 무려 천년을 넘어가도록 이 제도는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견인하는 가장 큰 권력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이 과거 제도가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는 기계적 평등이다. 특정인들 말고는 누구든 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또 그 결과에 따라 걸맞은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 말이다. 이 만큼 입신양명의 실현을 위해 최적의 조건은 있을 수 없다. 기회는 평등해야 하고, 결과는 공정해야 한다. 이런 과거 이념에 천년 이상 노출되다 보니 우리 역시 입시에 대해서는 예민할 정도로 평등과 균등을 강조한다. 그러다보니 대학입시에서 정작 주관자이자 주체자라 할 수 있는 대학의 역할은 부차적이다. 입시정책의 알파와 오메가를 정부가 좌지우지 한다. 물론 정부의 정책과 대학의 입장에는 일정한 알력관계가 존재하고, 또 줄다리기도 여전하다. 아울러 이 양자 사이에 학부모 단체는 마치 무슨 이익단체처럼 모든 교육정책에 사사건건 토를 단다.

 

이런 상황이니 교육부는 ‘3불 정책’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불 정책이란 대학 입시에서 ‘본고사’, ‘기여 입학제’, ‘고교등급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 바 힘깨나 있는 메이저급 대학들은 알게 모르게 3불 정책을 거스르는 입시전형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꼼수가 들통이라도 나게 되면 이런 저런 학부모 단체가 연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학당국과 교육부를 질타한다. 문제는 3불 정책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시행됨으로써 제한될 수 있는 자식들의 입시환경에 있다. 그러니 학부모들은 난리를 치고, 정부는 그들의 표와 여론이 무서워 눈치를 본다. 그리고 대학은 정작 신경 써야 할 교육보다는 준비되어 있고, 집안 환경 좋고, 미래가 나름 보장된 학생들을 뽑아 쉽게 학벌 네트워크를 확장하려고만 든다. 참으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현대 시민사회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주체가 되어 각자 필요한 곳에서 적절한 능력을 발휘하여 함께 사는 삶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터인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시민의 마음을 휘감고 있는 과거 이데올로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따라서 한국적 마인드에 빠져있는 대다수 시민들은 여전히 ‘과거급제’라는 환상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여론 주도층을 위시한, 이 땅의 대부분 지도층 인사들마저도 과거 이념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것을 줄 세워 순위를 매겨야 하며, 소질이나 능력보다 학교의 이름이 중요하고, 잘나가는 학과에 소속된 것이 핵심이 된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습관이나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이 사회를 이끌고 있는 가장 큰 이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제 아무리 대학들이 발버둥 쳐가며 다양한 혁신사업을 통해 학교를 개량하려해도 한번 줄 세워 매겨버린 순위의 변동은 요원하다.

 

요즘은 국내 순위에만 연연하지 않고 더 나아가 세계 대학 순위에 목을 맨다. 그래서 세계 100위권 대학으로의 도약이 어떠니, 글로벌 명문 대학이 어떠니 화려한 수식어로 대학을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다. 허나 정작 그 대학별 순위라고 하는 것이 발전기금의 양이나 전문가 집단에서의 평판 등을 따져 매기는 일종의 심심풀이 인기투표 같은 것인데, 과거 이데올로기에 매여 있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그것이 마치 전부인양 또 호들갑을 떨어대며 엄청난 양의 자금을 쏟아 붓는다.

 

그러다보니 정작 지금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적 기능인 양산에는 실패한다. 그러다보니 적절한 견제와 감시 시스템을 제공해줄 사회 내 대학의 역할은 작동되지 않고, 최상위 1인을 중심으로 쭉 줄서는 문화만이 여전히 번창 중이다. 특히 잘난 놈들이 판치고 있는 사회와 그들이 속한 영역에서 나는 구린내는 천지를 진동한다. 그래도 별 소리 없다. 왜? 그들은 1등이니까.

 

과거를 급제한 놈들은 많은 것이 용서된다. 그래서 집안의 어른이라 할지라도 싹수가 있어 공부와 암기에 재능을 보이는 사내아이가 나오면 골이 빠지라, 등골이 휘라 시험 지원에 여념이 없을 정도이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한 놈의 입신양명에 기대 자신의 이름도 빛을 내길 원하는 이 제도.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누천년!

 

그러니 이 사회 구석구석에 이 과거라는 시스템의 영향력은 대단하고 막강하다. 최근에 우리 사회의 이 과거시스템, 즉 입시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예서제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과거 이념은 이미 신앙되고 종교화된 거대한 가치체계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과거 이념이 제공해준 ‘줄서기 가치관’은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 뇌리에 깊게 박힌 하나의 유전질환처럼 되어 버렸다. 최고라고 하는 것, 1등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맨 앞의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는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종교마저도 이 과거 이데올로기에 붙어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교회마다, 성당마다, 사찰마다, 그리고 점집마다 넘쳐나는 손님들.. 그리고 정성들.. 그리고 함께 따라오는 엄청난 자금의 흐름들! 여전히 이 나라는 줄 세우기 이데올로기가 빛을 발하며 힘 꾀나 써대는 주술의 미몽에 빠져있는 셈이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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