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이야기(8)
광야에서의 다윗(2)
1.
다윗은 놉을 떠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도시국가 중 하나다. 그러니까 아기스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적장이다. 그래서 아기스의 신하들에겐 그를 받아들이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 사람은 분명히 저 나라의 왕 다윗입니다. 이 사람을 두고서 저 나라의 백성이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사무엘상 21:11)라며 펄쩍 뛰었다. 그들이 다윗을 ‘저 나라의 왕’이라고 부른 건 이치에 안 맞지만 말이다. 설화자가 시대를 착각했나? 다윗은 아직 왕이 되지 않았다. 왕은커녕 도망자 신세였다. 이런 실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순실수였을까, 아니면 그가 결국 왕이될 걸 암시하는 거였나?
다윗은 아기스 신하들의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단다(12절). 안식처를 얻기는커녕 죽게 생겼으니 말이다. 아기스에게 잡힌 그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그들이 보는 앞에서 미친 척한 게 그거다. “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그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도 하였다.”(13절). 잠깐 동안 미친 척한 게 아니라 상당기간 동안 그랬던 거다. 아기스는 참다못해 신하들에게 소리쳤단다. “아니, 미친 녀석이 아니냐? 왜 저런 자를 나에게 끌어 왔느냐?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저런 자까지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저런 자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느냐?”(14-15절). 결국 그는 가드에서 쫓겨났다. 목숨을 건진 거다. 확실히 다윗에겐 이렇듯 담대하고 지혜로운 면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결국엔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아기스에게서 나온 다윗은 아둘람 굴속에 숨었는데 이때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어떻게 알았는지 형들과 가족들이 다윗이 거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합류했는데 이때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다윗 주변에 몰려들었다는 거다. “다윗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사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사무엘상 22:2). 학자들은 다윗 이야기 가운데 이 대목이 가장 오래됐고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어 집단을 형성했다는 얘기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대번에 ‘하비루’(Hab/piru 또는 Ab/piru)를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의 기원이고 ‘히브리’란 말이 비롯됐다고 믿어졌던 그 ‘하비루’ 말이다.
19세기 후반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240킬로미터 떨어진 엘 아마르나(el-Amarna)란 곳에서 아카디아어로 쓰인 약 4백 개의 토판이 발견됐다. 이게 유명한 ‘아마르마 서판’(Amarna Tablets)이다. 이것의 대부분은 기원전 14세기 중엽 파라오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와 4세(이집트 최초와 최후의 유일신 숭배자 아케나텐과 동일인물) 시대에 가나안 도시국가의 왕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이다. 이게 구약성서 학자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거기에 이스라엘의 별명인 ‘히브리’와 발음이 비슷한 ‘하비루’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비루’는 가나안 도시국가들을 괴롭힌 약탈자로서 다윗 주위에 몰려든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하비루’에 대해서는 Anchor Bible Dictionary 제3권 6-10쪽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친족문화(kinship culture)의 영향력이 강한 사회였다. 조부모에서 손자에 이르는 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돕고 보호해주는 사회였다는 거다. 결혼도 대개는 대가족(extended family) 안에서 이루어졌다. 대가족은 각자의 토지를 갖고 있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교환과 매매의 범위가 씨족 범위를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룻과 보아스의 결합도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아둘람 굴속에 머물면서 더 이상 친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다. 그런 사람이 다윗뿐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아마르나 서판을 보면 다양한 이유로 친족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도시를 침략하기도 했고 또 보수를 받고 전쟁터가 나가서 싸워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일은 무리를 지어야 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몰려들었던 거다. 아마르나 시대와 다윗 시대는 3백 년 이상의 시간적 거리가 있지만 하비루가 다윗 시대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이유는 없다.
다윗이 ‘하비루’였을까? 다윗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과 아마르나 서판의 ‘하비루’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다윗과 그의 ‘전사들’은 자기들만의 룰을 만들어놓았고 이해득실에 따라 다양한 집단들과 이합집산 했다. 한때의 친구가 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나 촌락의 힘이 미치지 않는 먼 곳에 거주했다. 사막과 접경지에 머문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속해 있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왔으므로 어느 집단이든 생존수단과 머물 곳을 제공한다면 그들을 위해 기꺼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비루가 용병인 경우가 많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하비루가 도시나 촌락을 약탈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도시와 촌락주민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했다. 그래서 이들을 보는 시선에는 존중과 조롱이 뒤섞여 있었다. 도움을 받으니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공동체에서 내쫓긴 사람들이므로 조롱의 대상이었던 거다. 분명한 건, 이들이 다윗을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으로 봤다는 사실이다. 유유상종이었다는 거다. 안 그랬다면 그들이 다윗 주위에 몰려들지 않았을 거다. 안 그런가?
<Cave of Adullam, Filckr Yves Goldberg >
2.
이렇게 다윗 주변에서 집단을 이룬 자들이 뭘 했는지 살펴볼 차례다. 그일라(Keilah)는 아둘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루는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공격해서 타작한 곡식을 약탈해 갔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들렸다(사무엘상 23:1). 이에 다윗은 야훼의 의사를 물었다. 블레셋 사람들을 쳐도 되겠냐고 말이다. 아비아달이 사울을 피해서 놉에서 도망쳤을 때 갖고 온 ‘에봇’을 통해 물었던 모양이다. 야훼는 “그렇게 하여라. 어서 출전하여 블레셋 족속을 치고 그일라를 구해 주도록 하여라.”라고 응답했다(2절).
하지만 다윗 부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우리는 여기 유다에서도 이미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는데 우리가 그일라로 출전하여 블레셋 병력과 마주친다면 얼마나 더 위험하겠습니까?”라면서 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3절). 일리 있는 주장 아닌가. 자기들도 숨어 지내는 주제에 누가 누굴 구하겠다고 나서는가 말이다. 하지만 야훼는 다시 한 번 승리를 보장해줬고 이에 다윗은 야훼의 말을 믿고 출정해서 결국은 “그들을 쳐서 크게 무찔렀으며 블레셋 사람의 집짐승들을 전리품으로 몰아 왔다. 다윗은 이렇게 그일라 주민을 구원해 주었다.”는 거다(5절). 다윗 집단에게나 그일라 주민에게나 해피엔딩이었다.
얘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울은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때가 왔다면서 부하들을 그리로 보내 다윗 일당을 잡아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다윗은 다시 한 번 에봇을 통해 야훼에게 두 가지 질문을 두 번이나 물었다. 하나는, 사울이 자기를 잡으러 내려올 것인지 여부였고, 다른 하나는 그일라 주민들이 자기를 사울에게 넘겨줄지 여부였다. 이에 대해서 야훼는 사울은 ‘내려올’ 것이며 그일라 주민들은 다윗을 ‘넘겨줄’ 거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다윗은 6백 명쯤 되는 부하들을 이끌고 그일라를 빠져나왔고 사울은 그 소식을 듣고 출동하지 않았단다. 그일라를 빠져나온 다윗은 “떠돌아 다녔다.”(13절).
다윗 집단과 그일라 주민의 관계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다윗은 그일라 주민들이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을 블레셋 사람들 손에서 구해줬다. 왜 그랬을까? 아마 두 집단은 이전부터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였을 수 있다. 타국의 침략을 당했을 때 서로 돕기로 한다는 ‘상호방위조약’이라도 멪은 것처럼 말이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른 다음 가져온 전리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다윗이 다 가졌는지 그일라 주민들과 나눴는지 우린 알 수 없다. 그일라 주민들로선 어쨌든 다윗의 도움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됐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었겠다.
그 다음이 문제다. 야훼는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줄 거라고 알려줬다. 자기들을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구해준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준다는 게 말이 되나?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는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내려오지 않았으므로 이 일을 벌어지진 않았지만 만일 내려왔다면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넘겨줬을 것이 전제되어 있다. 야훼가 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과 그일라 주민과의 관계는 그리 든든하지는 않았다고 봐야 한다. ‘상호방위조약’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다윗 집단이 ‘하비루’였다면 그일라 주민들이 한 짓은 터무니없지는 않다. 둘의 관계는 철저하게 물질적 이해관계였으니 말이다. 다윗 집단은 보수를 받고 그일라 주민들을 보호해주는 계약을 맺고 있었을 수 있다.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주지 않았을 때 사울에게 받을 보복을 생각하면 그일라 주민들이 다윗을 넘겨주려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물질로 맺어진 관계였으니 말이다.
3.
다윗 집단의 ‘하비루’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은 나발 및 아비가일과 얽혀 벌어졌던 일이다. 이 사건은 다윗 집단의 성격을 잘 보여주므로 주의 깊게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사건이 사무엘상 25장 2절부터 42절까지 무려 마흔한 절에 걸쳐서 자세히 전해지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게다. 또한 이 얘기가 다윗이 사울을 두 번 죽일 수 있었는데 살려준 얘기 중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게다.
뒤를 보러 동굴에 들어온 사울을 우연히 거기 있던 다윗이 죽이지 않고 살려준 얘기는 앞 장에서 다뤘다. 그 다음에 사무엘이 죽어서 고향 라마에 묻혔다는 짧은 보도가 나오고(사무엘상 25:1) 그 다음에 다윗과 나발 및 아비가일 얘기가 펼쳐진다. 맥켄지가 “중요한 역사적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이는 문학적 걸작”(a literary masterpiece that seems also to contain valuable historical information)이라고 부른 바로 그 얘기 말이다(S. McKenzie, King David: A Biography, 96).
마온이란 곳에 나발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많은 가축을 소유한 부자였다. 그의 아내는 아비가일인데 설화자는 나발과 아비가일을 각각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한 사람과 “이해심도 많고 용모도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묘사한다(3절). 얘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암시하는 언급이다. 하루는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다윗이 듣고 부하 열 명을 나발에게 보냈다. 다윗은 그들더러 나발에게 가서 먼저 만수무강을 축원한 후 공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시켰다.
“지금 일꾼들을 데리고 양털을 깎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른의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괴롭힌 일도 없으며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양 한 마리도 잃어버린 것이 없었습니다. 일꾼들에게 물어 보시면 그들이 사실대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잔치를 벌이는 좋은 날에 어른을 찾아왔으니 제가 보낸 젊은이들을 너그럽게 보시고 부디 어른의 종들이나 다름이 없는 저의 부하들과 아들이나 다름이 없는 이 다윗을 생각하셔서 먹거리를 좀 들려 보내 주십시오.”(7-8절)
말투는 공손하지만 내용인 즉 자기들이 너희를 지켜줬으니 보수를 내놓으라는 거다. 큰 단위로는 ‘조폭’이, 작은 단위로는 ‘동네 깡패’가 흔히 하는 낯익은 짓거리 아닌가. 여기서 우리는 다윗 집단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른바 ‘지하경제’가 그 때도 있었던 거다. 나발은 이 말을 듣고 발끈해서 이렇게 답했단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즈음은 종들이 모두 저마다 주인에게서 뛰쳐나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빵이나 물이나 양털 깎는 일꾼들에게 주려고 잡은 짐승의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겠느냐?”(10절)
나발도 한 가닥 하는 자였나 보다. 하긴 그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다니 적어도 그 지역의 유지쯤은 됐으리라. 그가 다윗을 모르지는 않았던 거 같다. 다윗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건 경멸조로 한 말일 테고 그를 ‘주인에게서 뛰쳐나간 종’으로 규정하는 걸 보면 그는 다윗의 정체를 알았다고 봐야 할 게다. 나발에게 다윗은 사울의 ‘종’에 불과했다. 주인집을 뛰쳐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불법세금’이나 거둬서 연명하는 ‘주먹’이었던 거다. 나발은 다윗이 부하를 6백 명이나 거느린 ‘대단위 주먹’인 줄은 몰랐나 보다. 그러니까 이처럼 거침없이 다윗을 욕했겠지. 나발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거다. 다윗의 정체를 알았으니 그의 편에 서야 할지 사울 편에 서야 할지를 두고 저울질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사울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작 수백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불법세금’이나 뜯는 다윗보다 한 나라의 왕인 사울의 편을 드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을 터이다.
부하들에게 보고받은 다윗은 즉각 부하 4백 명을 이끌고 나발을 응징하러 나섰다. 그런 자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사건의 전모가 “이해심 많고 용모도 아름다웠”던 나발의 아내에게 전해졌다. 일꾼 하나가 다윗이 나발의 사업을 잘 돌봐준 일과 ‘세금’ 수거차 온 다윗의 부하를 호통 쳐서 쫓아낸 일 등을 아비가일에게 말했단다. 그러자 그녀는 급히 음식을 준비해서 다윗 일행을 맞이한다. 그때까지 다윗은 반드시 나발을 징치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Antonio Molinari David y Abigail" by Antonio Molinari, Wikipedia Commons.>
아비가일이 이런 다윗을 만나자 급히 나귀에서 내려 얼굴이 땅에 닿게 절을 한 다음에 장문의 연설을 한다. 학자들은 이 연설을 신명기 역사가가 아비가일의 입을 빌려 자신의 역사관을 설파한 걸로 본다. 그녀는 자기 남편 나발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하고 다윗 부하들이 왔을 때 자기가 거기 없어서 일이 그렇게 됐다면서 가져온 음식을 부하들에게 나눠주라고 말한 후에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야훼께서 틀림없이 장군님의 집안을 영구히 세워 주시고 장군께서 사시는 동안 평생토록 아무런 재난도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일어나서 장군님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장군님의 생명은 장군께서 섬기시는 야훼 하느님이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존하실 것이지만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야훼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 이제 곧 야훼께서 장군께 약속하신 대로 온갖 좋은 일을 모두 베푸셔서 장군님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 주실 터인데 지금 공연히 사람을 죽이신다든지 몸소 원수를 갚으신다든지 하여 왕이 되실 때에 후회하시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야훼께서 그처럼 좋은 일을 장군께 베풀어 주시는 날, 이 종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25:28-31).
다윗은 이에 만족해서 그녀에게 덕담을 하고 돌아간다. 그 덕담 또한 짧지 않는데 그 중 주목할 부분은 “내가 오늘 사람을 죽이거나 나의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도록 그대가 나를 지켜 주었으니 슬기롭게 권면하여 준 그대에게도 감사하오. 하느님이 그대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오.”(33절)라는 부분이다. 이걸 천생연분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비가일은 “장군님을 거역하는 원수들의 생명은 야훼께서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것입니다.”라고 말해서 다윗의 원수 사울(또는 나발)의 죽음을 예견했고 이에 다윗은 아비가일 덕분에 손이 피를 묻히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그날 밤엔 만취해서 말하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그가 술에서 깨자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러자 나발은 “갑자기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열흘쯤 지났을 때에 야훼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다.”(38절). 이 얘기가 전하려는 바가 뭘까? 다윗이 사울을 직접 죽이지 않고 야훼의 처분에 맡겼듯이 나발 역시 그랬다는 걸까? 그 후 다윗은 사람을 보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겠다고 했고 그녀는 기꺼이 그 청혼을 받아들였다(39-42절).
이 얘기가 왜 여기 있을까? 설화자는 왜 이 얘길 여기 갖다놨을까? 무려 마흔한 절이나 되는 긴 얘기를 말이다. 우선 눈에 띠는 점은 이 얘기에서 다윗이 참 좋은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발의 가축들을 돌봐주고 보호해주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는 나발의 무뢰한 태도에 분노하지만 아비가일에게 설득되어 무력제압을 그만뒀고 나발이 죽은 후 과부가 된 이해심 많고 용모 아름다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는 건 하느님 백성의 기본적인 의무 아니던가. 또한 이 얘기엔 하느님의 섭리가 드러나게 작용한다. 다윗과 나발이 무력충돌 하지 않은 건 아비가일의 지혜 덕분이라고 치자. 설화자는 나발이 급사한 원인은 야훼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다. 다윗은 나발의 피에 책임이 없다! 다윗과 아비가일의 연설을 잘 읽어보라. 하느님 섭리에 대한 두 사람의 돈독한 신뢰와 믿음에 독자들은 감동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얘기도 다윗의 좋은 점을 부각시킨 ‘친 다윗’ 얘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됐나? 나발은 죽고 다윗과 아비가일은 결혼했다. 다윗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이 여인과의 결혼은 이미 앞장에서 다뤘다)과 이때는 이미 남이 아내가 돼버린 미갈에 이어서 세 번째 아내를 맞아들인 거다. 이 결혼에 담겨 있는 현실적인 의미를 놓치는 건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될 게다.
나발은 갈렙 족속에 속했다. 재산 규모로 보아 그는 족장 정도로 추측할 수 있겠다. 요즘 말로 하면 ‘지방토호’라고나 할까. 그와 아비가일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던 거 같다. 얘기 전체에 아들에 대한 언급이 없고 그녀가 다윗과 재혼하는 마당에도 아들에 대한 언급이 없으니 그렇게 추측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럼 나발의 재산은 누구에게 귀속됐을까?
이스라엘에선 남편이 상속할 아들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동침해서 아들을 낳아주게 되어 있다. 이를 어려운 말로 ‘형사취수법’(levirate marriage)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38장에 전해지는 유다와 다말 사건의 발단이 이 제도가 아닌가. 앞서 말했듯이 나발은 많은 재산을 소유한 갈렙 족속의 유지로서 사회적 지위까지 누렸던 사람이다. 이런 그가 비명횡사했으니 누가 그 뒤를 이어 지위와 재산을 물려받았을까?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당연히 아들이 물려받았겠지만 없었으니 아비가일 것이 되는 게 사회규범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다윗가 결혼했으니 그것들을 누가 차지했을까? 이건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다(McKenzie, King David: A Biography, 99. 맥켄지는 이런 이유로 다윗이 나발의 죽음에 모종의 역할을 했다고 추측한다. 다윗의 적이 딱 필요할 때 죽어주는데 그게 다윗과 무관하겠냐는 거다).
다윗이 처음부터 이걸 노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맘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발의 죽음은 야훼가 한 일이라니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다윗과 사랑에 빠진’(헤럴드 블룸) 야훼가 다윗의 앞길을 활짝 열어주려고 사건을 이렇게 끌고 갔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무리는 아닐 게다.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나발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나 따져 봐도 딱히 눈이 띠는 게 없다. 그는 ‘불법세금’을 걷으러 온 다윗 부하들을 호통 쳐서 내쫓았고 나중에 “왕이나 차릴 만한 술잔치를 베풀고 취할 대로 취해서 흥겨운 기분이 되어 있었다.”(36절)는 것밖에는 한 일이 없으니 말이다. 이게 죽어야 할 이유가 되나? 도덕과 윤리를 따지자면 다윗도 큰소리 칠 입장은 못 된다. 따라서 여기서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나발은 사울과 비슷한 운명이었다 하겠다. 크게 잘못한 건 없지만 다윗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발은 사라져줘야 했다. 다윗이 아비가일과 결혼함으로써 갈렙 족속 안에서 든든히 자리 잡고 그걸 발판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뻗어갈 수 있게 말이다. 이것은 다윗이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줌으로써 이스라엘 왕의 자격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세 사건을 나란히 배치하지 않았나 싶다. 좌우간 나발이 죽어서 다윗은 아비가일과 재산과 사회적 지위까지 얻었다.
곽건용/LA 향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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