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나무처럼 느렸으면 좋겠어
공포정치가, 무자비한 폭력이, 교묘한 억압과 악마적 술수가 난무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모두가 거리에 나가 손을 들고 몸을 쓰며 싸울 수는 없다. 그러나 지은이는 숨죽이게 하는 세상에 내 숨을 떳떳하고 고요하게 쉬는 것이 아름다운 저항임을 ‘제 숨’을 포기하지 않을 삶을 선택할 수는 있음을 보여준다. 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면 숨 쉴 자격을 잃는 것이다. 노랫말 곳곳에 자연과 더불어 쉬지 못하는 인간의 숨은 창조의 동산을 떠난 폭력의 숨이며 인간다운 숨을 쉬는 것은, 하늘의 숨을 민감하게 느끼고 무딘 양심을 세밀하게 하며 지구의 수준을 아프게 지켜보며 예언자다운 자세를 가지는 것임을 역설한다.
김기석 목사(청파교회)는 그의 글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다정한 눈길을 보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자연과의 접촉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그렇기에 자연에 대한 깊은 외경심을 품고 있는 홍순관의 노랫말에 담긴 영적 지향은 자유이다. 그의 낮고 슬픈 목소리가 우리 영혼을 고요하게 만든다. 그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 속에 담긴 깊은 뜻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비종교적인 언어를 통해 가장 깊은 비의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그의 시선은 예수를 닮았다.”
<대지의 눈물>을 듣고 또 들으면서 “빼앗긴 소녀들의 한 서린 날숨이, 그 숨을 아프게 들이마시고 다시 위로의 날숨으로 토해낸 노래꾼의 노래가, 내 안으로 ‘낯설게’ 들어와 내 마음을, 내 영혼을 깊이 그리고 아프게 헤집는다.”고 토로하는 백소영 교수(이화여대)는 “보물을 발견한 기쁨으로 논두렁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생기 있게 나물을 캤을 그녀들이 환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고 읊조린다.
“쌀 한 톨에서 우주의 무게를 보는 사람의 슬픔“을 간파한 김영봉 목사(와싱톤한인교회)는 홍순관의 슬픔의 정체를 이렇게 묘사한다. ”작은 생명의 고통을 보면서 온 우주의 신음을 보는 슬픔이며, 어린 소녀의 눈물에서 인류의 고난을 보는 슬픔이다. 한 사람의 불의에서 온 세상의 죄악을 보는 슬픔이며, 아침 뉴스에서 인류 역사를 보는 슬픔이다. 온 우주에 가득한 하나님의 흥겨운 춤에 눈 감고 죽음의 광란에 도취해 있는 인류를 보는 슬픔이다. 그 슬픔이 오늘도 그를 흔들어 깨워 기타를 치고 노래하게 한다. 슬픔만이 슬픔을 치유할 수 있으므로!“
사람을 향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향한다는 연민의 정에 있음을 강조하는 저자는 일상의 노래를 부르려고 많은 것을 버렸다. 대중보다는 소외된 사람들, 생색보다는 뜻이었다. 하여 이 책은 성서와 예수를 노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시대에 불러야 하는 노래는 어떤 것인지 오롯이 담고 있다.
이 책의 구성
저자의 노랫말에 붙인 내면의 글 22꼭지
양화진선임연구원 지강유철과의 속 깊은 인터뷰
저자의 글에 대한 김기석, 김영봉 목사와 백소영 교수의 착하고 슬프면서 따뜻한 글
지은이 홍순관은…
10살에 서예를 배웠고 대학에선 조소를 전공했다. 11살에 화실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기타를 쳤으며 중학교 때 부산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고아원 양로원을 찾아가며 공연을 했다. 대학 때는 부산 대구지역 각 대학축제에 불려 다니며 노래를 했다. 그동안 무용무대미술, 뮤지컬배우, 라디오와 TV방송진행, 공연연출, 기획, 가스펠, 동요, 국악노래, 민중가요, 시노래 등 매우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활동했다. 대추리, 용산참사현장, 강정마을, 팽목항, 광화문광장, 필리핀빈민촌, 베트남학살현장, 오키나와미군기지 등 아픈 현장에서부터 초·중·고·일반대학과 신학대학 그리고 관공서, 기업, 시민단체에서 강의와 공연을 했다. 일본군성노예, 결식학생, 노인, 노숙자, 장애인, 노동자 등 국내문제와 기후온난화, 전쟁 등 국제문제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이 맞닥뜨린 예민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기획 및 초청 공연을 했다. 또한 광장으로 불리는 길거리공연에서부터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KBS홀, 아르코예술극장, 뉴욕링컨센터에 이르는 무대에서 현장성과 예술성을 버리지 않았다. 세 권의 책과 10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이사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홍보대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평화센터를 지으려는 꿈을 가지고 새 음반 <시간은 나무처럼 느렸으면 좋겠어>를 녹음 중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 독자에게 띄우는 편지 셋 | 홍순관 ・ 4
새의 날개
새의 날개 ・ 12
천국의 춤 ・ 17
나무 ・ 21
은혜의 강가로 ・ 28
십자가 ・ 32
신의 정원
어떤 바람 ・ 38
산 밑으로 ・ 44
여행 ・ 51
민들레 날고 ・ 56
성모 형 ・ 65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
나처럼 사는 건 ・ 70
저 아이 좀 봐 ・ 75
벽 없이 ・ 80
바람의 말 ・ 82
나는 내 숨을 쉰다 ・ 85
깊은 인생 ・ 90
푸른 춤 ・ 95
대지의 눈물 ・ 98
춤추는 평화
소리 ・ 104
낯선 땅 여기는 내 고향 ・ 107
쌀 한 톨의 무게 ・ 111
또 다른 숲을 시작하세요 ・ 115
시간은 나무처럼 느렸으면 좋겠어
내가 드린 기도로 아침이 오진 않는다 ・ 122
큰 나무만으론 산을 이룰 수 없네 ・ 126
평화는 아침에 피어난 꽃처럼 오리니 ・ 129
지강유철의 선택과 옹호 | 부박(浮薄)한 시대에 부는 바람처럼 ・ 133
낯선 땅을 고향으로 바꾸기 | 김기석 ・ 229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다 | 김영봉 ・ 248
노래로 나타나신 하나님 | 백소영 ・ 259
밑줄긋기
아, ‘숨’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숨’은 곧, 목숨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귀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깨끗한 숨을 쉴수 있는 맑은 공기가 없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고백은 계절의 풍요에서 그치는 감상이 아니요, 공멸로 떨어지는 지구를 향한 절실한 연민이요, 통회다.
<나는 내 숨을 쉰다> 중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 교회는 얼마나 아름다운 춤을 출까. 이웃과 하나가 된 교회는 얼마나 든든한 춤을 출까. 말씀과 하나 된 신자는 얼마나 거룩한 춤을 출까. 하나님과 하나 된 인간은 얼마나 어른스러운 춤을 출까. 자유의 춤이요, 천국의 춤이다.
<천국의 춤> 중에서
나무가 노래고, 냇물이 노래다. 큰 산이 노래며 바다가 노래다. 만물이 노래요, 이 세상 사람들이 노래다.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이 노래다. 흔들리는 나뭇잎보다 더한 춤이 어디 있을 것이요, 바람소리보다 더한 노래가 어디 있겠는가.
<나무> 중에서
은혜 속에 산다는 것은 그 분이 필요할 때 수도꼭지처럼 틀었다 잠그는 편리함에 있지 않다. 매일을 그 분의 강물에 들어가 사는 삶이다.
<은혜의 강가로> 중에서
이 부박한 시대를 건너가는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될까? 역사와 시대의 쭉정이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안다. 오래 걸리지만 확연히 드러난다. 연민과 진심으로 흐르는 눈물의 코드나 리듬은 국경과 시대를 넘어 다르지 않다. 이 눈물이 이 시대를 지나갔으면 좋겠다. 일 할 밖에, 농부처럼 입 다물고 허리 굽혀 일 할 밖에. 아, 방금 나를 지나간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됐을까?
<어떤 바람> 중에서
<산 밑으로>는 정을 떼는 슬픔이 아니요, 있던 곳(익숙한 곳)을 떠나 저 아래 땅(낯선 곳)에 사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러 가는 학생의 발걸음이다.
<산 밑으로> 중에서
바다를 건너간 조선민들레. 흙 한줌이면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 흰색 갓털처럼 가벼운 삶을 사신 예수. 바람은 성령이요, 뿌리는 말씀이다. 민들레 날고 예수가 날고~ 민들레 날고 자유가 날고~!
<민들레 날고> 중에서
오늘도, 들의 꽃이 산의 나무가 말한다. 세월의 강이 침묵의 바다가 인류의 귀에 들려준다. 제 숨 쉬며 살라고 말한다. 강아지풀이 바람에 흔들린다. 다행이다. 자연만물이 (아직은)입을 완전히 다물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나처럼 사는 건> 중에서
“저 아이를 좀 보라”는 것은, 아이가 바라보는 자연과 세상을 보라는 것이요, 아이 속에 숨어있는 신비한 언어를 들으라는 것이요,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천국을 보라는 것이다.
<저 아이 좀 봐> 중에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역사에서 맞닥뜨리는 분노를 느낄 수 없다면 이미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통증을 모르니 병이 깊어질 것이요, 신경세포는 무디어져 죽음에 이를 것이다. 고통에 중독된다면 온전한 삶은 포기해야 한다. 고통과 깊은 번민을 알아차리는 것이 도리어 살 수 있는 길이다. 국가는 백성의 소리를 들어야 하며, 지구는 우주의 눈물을 보아야 한다.
<깊은 인생> 중에서
‘대지의 눈물’은 어쩌면 ‘평화’다. 유머란 무릇 실컷 울고 난 후에 머금은 미소를 말하는 것이니, 눈물은 평화로 건너가는 강이다. 결국 이 세상은 눈물이 구원할 것이다. 깊은 연민과 가없는 자비를 품은 눈물 없이는 결코 구원은 없을 것이다.
<대지의 눈물> 중에서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너무 작고 너무 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어리석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도 꽃은 열리고 나무는 자란다. 역사는 흐르고 성령은 움직이신다. 마음과 영혼의 귀가 열렸을 때, 우주를 운행하시는 그 분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소리> 중에서
내가 드린 기도로 아침이 오진 않는다. 내가 드린 기도로 해가 뜨진 않는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노동처럼 오래 걸리니 무심히 기다릴 뿐이다. 이 세상 가장 짙은 그늘 속으로 말없이 들어가는 일인 것을 알 뿐이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노을처럼 아침을 기다릴 뿐이다.
-<내가 드린 기도로 아침이 오진 않는다> 중에서
평화를 살지 않으면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무릇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이 없다면 평화는 없을 터, 우리의 흘린 눈물 없이 평화는 없다. 겨울을 지나간 시간 없이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평화는 아침에 피어난 꽃처럼 오리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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