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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나는 토기장이다

by 한종호 2015. 12. 26.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8)

 

나는 토기장이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族屬)아 이 토기장(土器匠)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能)히 너희에게 행(行)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族屬)아 진흙이 토기장(土器匠)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예레미야 18:6).

 

‘하나님을 크게 웃기려거든 너의 계획을 이야기하라.’는 말이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난다. 무엇보다도 지당하다 싶다. 계획이 멋지면 멋질수록, 치밀하면 치밀할수록, 자신감이 넘치면 넘칠수록 하나님의 웃음소리는 더 커지실 것 같다. 세운 계획을 장담하면 장담할수록 하나님은 아무 말 없이 껄껄 웃으실 것 같다.

 

어느 날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하신다. 거기에서 하실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성전에서만 말씀하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말씀하신다. 예배 중 설교시간을 통해서만 말씀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든 말씀하신다.

 

전할 말이 있으니 내려가라 한 곳은 토기장이의 집이다. 주님은 얼마든지 이웃이 일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주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내려갈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하나님은 일하는 농부들의 호미 끝에 계시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연필 끝에 계시고, 탄을 캐는 광부들의 곡괭이 자루 끝에 계시고, 밥 짓는 여인들의 젖은 손끝에 계심을 기억하라’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말도 같은 뜻을 담고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갔을 때 토기장이는 녹로로 일을 하고 있었다. 녹로란 오지그릇을 만드는 데 쓰는 둥근판으로, 흔히 물레라고 부르는 도구다. 토기장이가 돌림판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그릇은 매우 중요한 생활필수품,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일은 어느 마을에서나 중요한 일이었고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장인이었을 것이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드는 모습이야 자주 보았을 터이지만 주님께서 내려가라 하신 일, 토기장이를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눈과 마음은 예전과는 달랐을 것이다. 흙을 이겨 반죽한 뒤 물레 위에서 그릇을 빚어내는 토기장이의 모습 속에서 예레미야는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이스라엘이 한 줌의 흙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게 웬일, 토기장이의 손에서 만들어지던 그릇이 그만 터지고 만다. 그릇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그릇이 망가졌으니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모습 또한 예레미야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토기장이는 망가진 흙을 버리지 않았다. 망가진 흙을 버리는 대신 다시 반죽하여 새로운 그릇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가슴은 뭔가 뜨겁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모습을 보라고 나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보내신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싶은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임한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새번역>

 

“진흙이 옹기장이의 손에 달렸듯이 너희 이스라엘 가문이 내 손에 달린 줄 모르느냐? 이스라엘 가문아, 내가 이 옹기장이만큼 너희를 주무르지 못할 것 같으냐? 야훼가 하는 말이다. 진흙이 토기장이 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다.” <공동번역 개정판>

 

그 때 하나님의 메시지가 내게 임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내가 이 토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겠느냐?” 하나님의 포고다! “이 토기장이를 잘 보아라. 나는 그가 자기 진흙을 다루는 방식으로 너희 이스라엘 백성을 다룬다.” <메시지>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희망과 경고’가 이 메시지에서 서로 손잡고 있다. 토기장이의 손에서 망가진 그릇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경고라면, 망가진 흙으로 다시 빚는 그릇은 희망이 된다.

 

주님은 토기장이, 각자 개인의 삶은 물론 민족까지도 빚으신다. 어떤 그릇으로 빚을지는 오직 토기장이만 아신다. 진흙이 물레 위에 놓여 있다 하여도 그릇의 크기나 용도를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이기 때문이다. 진흙이 어찌 저 스스로 그릇이 되겠는가? 토기장이 주님이 빚으신다. 맨 처음의 한 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던 그 손으로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빚어 가신다.

 

진흙인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토기장이에게 맡기는 믿음과, 다 빚으실 때까지 기다리는 믿음, 나를 왜 이렇게 빚으셨냐고 원망하지 않는 믿음, 완악함으로 굳어지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 굳어버린 흙으로는 어떤 그릇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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