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0)
걸어 다니는 두려움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先知者)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門)에 있는 착고(着錮)에 채웠더니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着錮)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 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예레미야 20:2~3).
성전 뜰에 선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주님의 뜻을 외친다.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이 백성이 고집을 부려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내가 이미 선포한 그 모든 재앙을 이 도성과 거기에 딸린 모든 성읍 위에 내리겠다”(예레미야 19:15).
예언자란 말씀의 통로, 주님이 전하라 하신 말씀을 받은 대로 전할 뿐이다. 백성들의 기대에 따라 주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뺄 수가 없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예언을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이 들었다. 바수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이다. 유사장이란 호칭이 낯선데, 성전의 총 감독을 의미한다.
성전을 책임지는 자가 듣기에 예레미야가 전한 말은 더없이 거북한 말이었다. 성전을 찾는 이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심판을 외치다니, 바스훌이 보기에 예레미야는 몹시 위험한 인물이었다.
바수훌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목에 차꼬를 채운다. 차꼬란 기다란 나무토막을 맞대고 그 사이에 구멍을 파서 머리와 손과 발을 구멍에 넣고 잠가두는 형구를 말한다. 차꼬로 채우면 머리는 물론 손과 발을 꼼짝할 수가 없다.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차꼬에 채웠던 것은 예레미야가 성전의 질서를 깨뜨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맞고, 묶이고, 갇힌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만하면 벌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정도 고생과 수치를 당했으면 다시는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하룻밤이 지나자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차꼬에서 풀어준다. 차꼬에서 풀려났을 때 예레미야는 바스훌에게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이제는 당신의 이름을 바스훌이라 부르시지 않고, 마골밋사빕이라고 부르실 것이오.” <새번역>
다음날 아침에 바스훌이 차꼬를 풀어주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야훼께서는 그대의 이름을 사면초가라 부르실 것이오. 다시는 바스훌이라고 부르시지 않기로 하셨소.” <공동번역 개정판>
다음날 바스훌이 와서 그를 풀어주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셨소. 이제 당신 이름은 바스훌이 아니라 ‘사면초가’요.” <메시지>
성서적인 의미로 보자면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고유한 삶을 허락받는다는 뜻이다.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을 허락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름이 달라진다는 것은 단지 호칭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와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바스훌’은 ‘형통하다’ ‘즐겁다’는 뜻이다. 반면 ‘마골밋사빕’은 ‘사방에 두려움이 있다’ 즉 ‘사면초가’라는 뜻이다. 본래의 이름은 ‘형통하다’는 뜻이지만, 바스훌의 존재는 사방에 두려움이 있는 존재로 바뀌게 되고 만다.
이름이 바뀌는 것도 꺼림칙한데 이어지는 4절에서 주님은 바스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라”
바스훌의 주변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스훌 자체가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모든 친구들에게도 두려움이 되는 것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두려움이 따라온다.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 바스훌의 삶은 ‘걸어 다니는 두려움’, ‘옮겨 다니는 두려움’이 되고 만 것이니 이보다 끔찍한 삶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주님의 말씀을 막은 지도자, 그는 제 아무리 바스훌이라 우겨도 더 이상 ‘형통’한 존재가 아니다. 그저 ‘걸어 다니는 두려움’일 뿐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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