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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말씀을 제 멋대로 뒤집고 왜곡하는 이들

by 한종호 2016. 2. 15.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5)

 

말씀을 제 멋대로 뒤집고 왜곡하는 이들

 

 

“너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兄弟)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應答)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嚴重)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各) 사람의 말이 자기(自己)에게 중벌(重罰)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萬軍)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妄靈)되이 씀이니라 하고”(예레미야 23:36).

 

“자전거를 타는 것과 신앙생활 하는 것,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요?”

 

교우들과 말씀을 나누는 시간, 이따금씩 엉뚱한 질문을 할 때가 있다. 한 번은 교우들에게 자전거와 신앙생활에 대해서 물었다. 질문을 받은 교우들은 갸우뚱했다. 자전거 타기가 제 아무리 어렵다 해도 어디 신앙생활에 비길까, 그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들이었다. 그런 교우들에게 내 의중을 말했다.

 

“제 생각에는 자전거 타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열심히 안 해도 티가 별로 안 나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데, 자전거는 폐달을 열심히 밟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서 바로 넘어지고 말잖아요.”

 

이렇게 물은 적도 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꿀처럼 단 가요, 아니면 쓰디쓴가요?” 대부분의 교우들은 “달다”고 대답을 했는데,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편 119:103).

 

그런 교우들에게 목사인 내게는 주님의 말씀이 소태처럼 쓸 때가 너무도 많다고 속내를 밝힌다. 목사가 주님의 말씀을 쓰다 하다니, 그렇게 말하는 목사를 바라보는 교우들의 표정에 의아함과 걱정이 담기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주님의 말씀을 가리켜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를 하신다.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는 자를 주님께서 버리겠다고(33절), 벌하겠다고(34절), 그의 말이 중벌이 되게 하겠다고(36절) 거듭해서 경고하신다.

 

‘엄중한 말씀’으로 옮긴 히브리어 ‘맛사’는 ‘말’ ‘말씀’이라는 뜻과 함께 ‘부담’ ‘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씀’이란 뜻과 ‘부담’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묘한 의미로 다가온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무게감을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그저 귓가를 간질이는 가벼운 농담일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편하게 웃으며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말씀들은 주변엔 많다. 잘 웃기는 강사가 인기를 얻기도 한다.

 

모세는 산에 올라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거나 ‘권면’을 하지 않고 ‘명령’을 한다(출애굽기 34:32). 그러고 보면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명령을 받는다는 것이다. ‘말씀’과 ‘부담’이 같은 단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를 살려 <새번역>은 33절을 이렇게 옮겼다.

 

“이 백성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예언자나 제사장이 너에게 와서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 있느냐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여라.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로 나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내가 이제 너희를 버리겠다 말하였다고 하여라.”

 

주님의 말씀을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이들이 오히려 주님께 부담이 된다고, 결국 주님은 부담이 되는 이들을 버리시겠다고 한다. 이런 주님의 뜻은 너무도 분명하여 36절에서 다시 한 번 반복을 하신다.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너희가 다시는 써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그런 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그에게 정말 부담이 될 것이라고 하여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만군의 주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여라. <새번역>

 

야훼의 말씀은 짐스럽다, 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 일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바로 그 말이 짐이 되리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살아 있는 이 하느님의 말, 저희들의 하느님 만군의 주 야훼의 말을 뒤엎는 것이다. <공동번역 개정판>

 

더 이상 “주님의 짐이다” 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저마다 그 말이 자신에게 짐이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살아 계신 하느님, 만군의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였다. <성경>

 

주님의 말씀이 부담스럽다는 말은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이 정말로 말하는 자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주님의 말씀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쓰는’ 일이라 하신다.

 

‘망령되이 쓰다’는 것은 ‘뒤집다’ ‘제 맘대로 고쳐쓰다’라는 의미이니, 주님의 말씀을 짐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말씀을 제 멋대로 뒤집고 왜곡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가 있다.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응답을 하셨는지,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을 하셨는지 다만 그것을 묻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보태거나, 주님의 말씀에서 내 생각과 다른 것을 빼내는 것은 망령된 일이다.

 

좋은 말씀이기는 하나 삶으로 실천하기엔 부담스럽고 짐스러워 슬쩍 밀어둔 말씀들이 우리에겐 적지가 않다. 주님의 말씀이 송이꿀처럼 달다고 한 것은 말씀이 본래 꿀처럼 달아서가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소태처럼 쓰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기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그 때 비로소 소태같이 쓴 말씀이 송이꿀이 되는 것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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