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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영의 '구약성경 속 여성 돋보기'

왕의 권력을 조롱한 왕후 와스디

by 한종호 2016. 12. 28.

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18)

 

왕의 권력을 조롱한 왕후 와스디

 

인간에게 허락된 모든 권력의 드라마는 그 권력 아래서 대항하는 행위와 증언으로 나타나곤 한다. 권력과 관련한 구약의 이야기들은 약한 타인을 희생물 삼아 특정 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힘의 과시에 두지 않고 섬김을 그 바탕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제국의 역사 어디를 들여다봐도 권력은 힘의 과잉을 추구하고 축적하여 민중을 억압했을 뿐이지 섬김의 지도력은 아니었다. 구약성경은 창조사건 이후로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민족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고대근동의 작은 도시국가들과 제국들과의 각축전 속에서 펼쳐지는 구속 역사의 드라마다. 이 거대한 드라마에 작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장차 정치적 음모와 권력의 칼끝이 유대민족을 향하는 학살의 위기가 닥쳐오기 전, 왕의 권력에 불복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 이야기다.

 

때는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 왕이 인도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통치하던 때였다(에스더 1:1). 왕이 즉위한지 3년 된 시점(주전 483년), 왕은 수산 궁에서 지방의 귀족들과 관료들을 위해 잔치를 열었다. 잔치는 180일 동안 이어졌고, 왕은 왕궁의 부유함과 위엄, 그리고 혁혁한 공로들을 자랑하려고 보물 전시회까지 열었다(3-4절). 도성의 주요 인물들을 소집한 것은 통치 기반의 기초를 다져 세력 강화를 꿈꾸는 왕의 열망과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의도와 셈법으로 보인다.

 

이후에 왕은 왕궁의 뜰에서 귀천을 막론하고 수산 도성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위해 7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5절). 고급스러운 청색의 휘장을 비롯해 대리석 기둥, 금과 은으로 만든 의자들, 진귀한 갖가지 돌로 만든 모자이크 바닥위에서 왕의 호사스러운 잔치는 계속되었다. 금과 은으로 만든 잔, 끝없이 오가며 건네지는 왕의 술잔, 손님은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셨다(6-8절). 사치와 향락이 물씬 베어난 왕의 잔치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거둬들인 조공과 조세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때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 와스디 역시 왕궁에서 여인들만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9절). 왕은 술에 취해 왕실의 내시 7명에게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가 왕후의 관을 쓰고 왕 앞에 나오도록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왕은 자기 왕후의 아름다움을 뭇 백성과 지방 관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9-11절). 잔치에 취해서 자기도취적 영광에 흠뻑 빠진 왕은 지금껏 자신의 위대함을 자랑한 것처럼 왕후 역시 자기 소유물처럼 자랑거리로 삼으려 했을 터. 그러나 상황은 왕이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왕후는 왕이 벌여놓은 잔치참여를 거절한다. 그러자 왕은 와스디 왕후의 불복종에 격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왕은 “마음속이 불붙는 듯 했다”(12절).

 

본문은 왜 와스디 왕후가 잔치를 따로 열었는지, 왕의 명령에 불복종 했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왕후의 거절은 사치와 쾌락으로 버무려진 왕의 잔치에 찬물을 쏟아 붓는 역할이 되고 말았다. 왕후의 불복종은 제국의 왕이 누리는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왕보다 위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제국의 왕이 왕후의 불복종 때문에 조롱받게 된 셈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자만과 영광을 자랑하려는 잔치였지만, 도리어 술에 취해 앞뒤분간 못하는 경박한 왕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제국의 영광을 자처하는 왕의 권위가 왕후의 불복종 때문에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제국의 권력이 주는 단맛에 흠뻑 취해있던 왕은 왕후의 거절과 불복종에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서 왕은 전례에 따라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을 듣기 위해 현자들을 불렀다. 이들은 행정을 돕는 학자적인 보좌관들인 셈이다. 왕은 그들에게 왕명에 복종하지 않은 왕후 와스디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물었다(13절). 이때 왕의 기색을 꼼꼼히 살피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있었으니 므무간이라는 자였다. 그는 왕국의 최고 실세였던 일곱 명의 지방관 중에서도 왕의 최측근 인물이었다(14절). 그는 왕후의 문제 행동을 짚어가며 해결책을 제시한다.

 

첫째, 왕명에 불복종한 왕후 와스의 행동이 여염집 여인네들에게 알려지면 남편을 멸시할 것이고, 귀부인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단정하며 확대해석한다(16-18절) 므무간은 여인들의 연대 행위에 따른 불안감을 바짝 조성한다. 그러니까 므무간의 말은 왕후 와스디의 불복종이 왕실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국 전체의 반역의 기운을 불어넣는 조짐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뜻이다. 사적인 왕실의 문제가 국가적인 혼란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므무간의 예측은 왕을 긴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둘째는 해법 제시다. 므무간은 왕의 조서를 내려 제국의 법률에 기록하고, 왕후가 왕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할뿐더러 왕후의 자리를 박탈하고, 왕후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내용의 조언이었다(19절). 왕은 조서가 전국에 반포되면 모든 여인들이 각자의 남편을 존경할 것이라는 므무간의 조언을 받아들였다(20절). 그리고 모든 지방에 남편이 집안을 주관하는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칙령을 각 민족 언어로 선포하게 했다(22절). 한마디로 이 칙령은 왕후에게 인정받지 못한 권위와 자존심 회복을 원하는 왕에게서 시작된 것으로서, 모든 남편들이 아내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라는 법령인 셈이다. 제국의 왕이 자신의 왕후에게 굴욕당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조언자의 법령에 만족해하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상황인가. 권위를 상실한 권력자의 안쓰러운 민낯이다.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을 살피는 최측근 관료의 한마디 말만 믿고 곧바로 법률로 정하는 경박하고 무능한 왕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치스럽고 무능한 제국의 왕에게 불복종한 왕후 와스디의 행동은 또 다른 유대인 왕후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머지않아 이 사건은 왕후 와스디를 뛰어넘는 용기로 민족의 죽음위기를 타개하는 에스더의 출현을 예고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건과 삶의 배후에서, 때로는 너절한 일들 사이에서 뜻을 이루시기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것은 강함이 아니라 연약함 뒤에서 새 일을 기획하시는 하나님의 교묘하신 숨은 돌봄, 곧 섭리 앞으로 우리를 불러들일 것이다.

 

제국의 최고 권력을 자랑하는 사치스러운 잔치는 역설적으로 왕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의문은 더 큰 권력자의 힘이 아니라 좀 더 연약해 보이는 자의 불복종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권위는 힘을 옳은 것을 위해 사용할 때 빛나는 것이지 자기만족을 채우는 힘자랑에 있지 않다. 이것은 끝내 치욕으로 귀결될 뿐이다. 사건 배후에 숨어계시면서 인간의 그릇된 권위의식과 권력욕을 비웃고 계실 하나님이 그려지지 않는가.

 

김순영/백석대 신학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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