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5)
박근혜의 콧바람, 왕의 콧김
예레미야애가 4장 2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 곧 “왕”을 달리 “우리의 콧김”(개역개정), “우리의 숨결”(공동번역)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루아흐 압페누”를 번역한 것이나 아무래도 석연하지 않다. 즉 히브리어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와 우리말 번역으로 이 본문을 읽는 독자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을 것 같다.
“콧김”이라고 하면 그것은 콧구멍에서 나오는 더운 김을 뜻한다. “콧김을 쐬다”라는 말은 어떤 물체를 코 가까이 가져다 대고 거기에 콧구멍에서 나오는 김을 받게 하는 것이다. “콧김이 세다”라는 말은 관계가 가까워서 영향력이 세다는 말이다. “죽은 놈의 콧김만도 못하다”라고 하면 난로나 화로에 불기운이 없어져서 따뜻한 기운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다.
“숨결”이라고 하면 이것은 숨 쉬는 속도, 숨 쉴 때의 그 높낮이를 이르는 것이다. “숨결이 거칠다”라는 것은 순 쉬는 소리가 고르지 않고 거센 것을 말한다.
히브리어 자체에서도 하나님의 “콧김”이라는 표현은 강한 바람을 묘사할 때 쓰인다.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출애굽기 15:8), 때로는 “꾸지람”과 평행을 이루는 “분노”를 뜻하는 표현과도 관련되어 쓰인다.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밑이 드러나고”(시편 18:15). 달리 코로 숨을 쉬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내기도 한다(이사야 2:22).
예레미야애가 4장 20절에서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공동번역>이 “우리의 숨결”이라고 한 것은 <개역개정>이 “우리의 콧김”이라고 한 것보다는 낫지만, 이 문맥에서 그 표현이 지닌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둘 다 충분하지 않다. “콧김”이나 “숨결”보다는 “생명(력)”이라고 번역하면 그 의미 전달이 더 정확하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은 백성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이다. 예레미야애가 4장 20절의 “콧김”이나 “숨결”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기 2:7)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생명(력)”이다. 욥기에서 욥이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욥기 27:3)고 말했을 때, 여기 “하나님의 기운”이 바로 “하나님의 루아흐”이다. 그 “루아흐”가 그의 “코”에 있다는 것은 바로 “생명”이 아직 그에게 붙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말엔 콧바람도 있다. 루아흐가 바람, 숨결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 콧김은 콧바람이 되기도 한다. “콧바람 좀 쐬려고”, 또는 “콧바람 싱싱” 하는 표현들은 모두 신선한 바람을 호흡하면서 육신과 영혼의 호흡을 새롭게 하자는 의미이니 성서의 쓰임과 사뭇 유사한 느낌마저 준다. 여기까지 왔으니 하나 질문을 던져보자. 콧대가 높으면 거기서 나오는 콧김, 숨결, 콧바람은 셀까?, 아닐까? “흥”하고 코웃음 치며 내는 콧김도 있다. 콧대가 높은 사람이 그러면 주변이 사뭇 싸아~ 하고 긴장될 것이다. 제 콧대가 높다고 내는 콧김, 콧바람도 셀 줄로 아는 착각이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나오는 김, 숨결, 바람에는 무엇이 담겨 있지 못할까? 단언컨데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생명력”이 없다. 더군다나 권력자가 그런 콧김, 콧바람을 내면 저주나 죽음이나 비난의 기운만 그득하다. 이를테면 메르스보다 더 한 세균덩어리를 공기에 퍼뜨리는 행위가 된다. 대통령 박근혜가 코에 잔뜩 힘을 주고 콧바람을 장풍처럼 낸 모양이다. 현재 탄핵으로 직무정지 상태에서 '출입기자단 신년 인사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일방적인 언론플레이를 해, 화를 돋궈 그런 모양인데, 자기 변명의 바람은 센지 모르나 거기에는 역시 생명력이 없다. 이제 정치적 수명도 덩달아 줄어드는 건 아닐까? 이왕 내려면, 제대로 내시지. 하나님의 루아흐가 없는 왕의 콧김, 콧바람은 나라를 어지럽히고 부매랑이 되는 비운의 숨소리라는 것은, 성서의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일깨운 진리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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