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

인생의 비밀

by 한종호 2017. 1. 18.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3)

 

인생의 비밀

 

어린 시절 선친의 직업 덕에 자주 이사를 다녔다. 거의 3년마다 전근을 다니셨기 때문에 한 곳에서 오랜 기간을 지낸 적이 없다. 덕분에 농촌과 어촌, 산촌과 도시의 생활을 드문드문 맛볼 수 있었다.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종종 불평을 했지만, 성장해서 돌이켜보면 그 또한 인생의 한 가르침이었기에 감사를 드린다.

 

공자는 한 나라에 또는 한 지역에만 머물러 지내지 않았다. 55세 즈음부터 태어난 노나라를 벗어나 온 중국을 제자들과 돌아다녔다. 소위 ‘천하주유’를 하면서 엄청난 거리를 다녔다. 여러 나라를 거쳤고 여러 일들을 겪었다. 모든 국가에서 공자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군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을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하찮게 취급당하기도 했다.

 

중국을 두루 다니면서 공자는 결코 잠자리나 먹는 것, 입는 것을 가리지 않았다. 공자가 관심 둔 것은 인간의 내면과 그로 인해 확장되는 인간의 관계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어떤 곳인가 하는 공간의 문제는 그 곳에 머무르는 사람이 누구였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는 장소성의 문제로 환원시켜 주목했다.

 

어떤 사람이 “거기는 누추할 터인데 그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살았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 ≪논어≫, <자한> 14장

 

이사하려는 곳마다 교육환경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는 젊은 남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입에서는 늘 교육환경의 문제점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어디 가나 다 마찬가지라며 미국이나 유럽으로 이민가면 좋겠다는 얘기도 서슴없이 해댔다. 실제로 이민을 신청하여 허가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성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고등학교 총기사고 소식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접어야겠다며 흥분해서 말했다.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니까 염려하지 말라며 다독였지만 쉽게 그의 흥분을 충분히 가라앉히지 못하였다. 내친김에 차분하게 그에게 장소성에 관하여 차분하게 설명했다.

 

인간은 주어진 공간에서 본능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공간이 넓거나 좁거나 또는 따뜻하거나 춥거나 하는 공간 자체의 문제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 추억이라는 형태로 쌓인 층층의 사건들과 그 속에서 이루어졌던 상호간의 관계성, 즉 장소성에 더욱 주목한다.

 

공자가 가려는 지역이 누추했기에 제자 중에 하나가 왜 그런 누추한 곳에 가려느냐고 물었다. 제자는 그 지역에 대한 공간성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자는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이 군자였고, 군자들이 그곳에서 수양으로 하고 학문을 추구했던 곳이기 때문에 결코 누추하지 않다는 장소성에 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젊은 남성에게 좋은 곳을 찾아다니지 말고 거하는 곳을 아름다운 장소로 변화시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된 것처럼, 처음부터 아름다운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건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당신으로 인해 거처하던 곳이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전의 자이다

 

신약성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사도바울이다. 그의 위대함은 그가 지니고 있는 재능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은 이미 신앙 안에서 모두 버렸다고 했다. 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부족감을 자랑했으며, 이루어 놓은 모든 일은 자신이 아닌 주의 능력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주 안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남들이 알 수 없는 어떤 비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거나 당대의 뛰어난 선생으로부터 배움을 통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그가 이방인의 선교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어가면서 체득된 것이라고 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빌립보서> 4장 11절~12절

 

바울은 자족(自足)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여기서 자족이라는 말은 ‘스스로 만족하다’라는 의미 또는 ‘스스로 충족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족은 헬라어로 ‘아르케오(archeo)’인데 이 단어는 ‘돕는다’를 뜻하는 ‘아레고(arego)’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자족의 정확한 어원적 의미는 ‘스스로 자신을 돕는다’이다.

 

이어서 바울은 스스로 자신을 도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덧붙여 설명하는데, 비천과 풍부 그리고 배부름과 배고픔의 양면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신을 도울 수 있다고 확신 있게 말한다. 이를 통해 어떠한 상황에도 처할 수 있는 인생의 놀라운 비밀을 배웠다고 한다.

 

‘일체의 비결’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미에오(myeo)’라는 동사이다. 이것의 어원은 명사인 ‘미스테리온(mysterion)’이다. 신비, 수수께끼, 불가사의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미스터리(mystery)’가 여기에서 파생되었다. 바울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인생의 비밀을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삶의 가장자리를 경험하지 못했으면서 내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외치는 것은 거짓일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 능치 못함이 없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으려면, 먼저 삶의 극단을 체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 처해도 낯선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체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은 두려움과 상관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부하기 싫어 제대로 암기 못하면 외조부님은 가차 없이 회초리를 드셨다. 몸이 아파서 도저히 공부할 수 없겠다고 했다가 더욱 혼나기도 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의 일을 해내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 외조부님의 기본 교육관이었다. 도저히 공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공부하는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

 

주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외부적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 어떠한 상황이 주어져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꼿꼿하게 지켜낼 수 있는 것이 믿음의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다양한 상황 속을 지내오면서 그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 또한 속사람의 강건함이 절절한 까닭이다.

 

이정배/좋은샘교회 부목사로 사서삼경, 노장, 불경, 동의학 서적 등을 강독하는 ‘연경학당’ 대표이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이다.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장을 모두 암기한다고  (0) 2017.02.23
무엇을 걱정하는가  (0) 2017.02.14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0) 2017.01.30
선생이 되려하지 말라  (0) 2017.01.11
더불어 즐거움  (0) 2017.01.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