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66)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마가복음 10:13-16)

 

어느 날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부탁했다. ‘쓰다듬다’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손으로 가볍게 쓸어 어루만지다’, ‘마음을 달래어 가라앉히다’이다. ‘쓰다듬음’ 혹은 ‘어루만짐’은 참 살가운 행동이다. 쓰다듬음은 상대에게 나의 사랑을 전달하거나 표현하는 행위이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의 등을 토닥여준다든지 어루만지는 행위는 얼마나 숭고한가? 그것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의 몸짓이다. 주님이 자기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기를 바랐던 이들은 예수와의 접촉을 통해 아이들의 삶도 아름다워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의 장벽에 부딪혔다. 제자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꾸짖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아이들을 쓰다듬는 것은 시급한 일도 아니고 중요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보고 노하셨다. 그리고 정색을 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가복음 10:14) 어린이가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이’가 문자 그대로 어린이이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든, 예수님은 그들과의 접촉을 꺼리지 않으신다. 그들을 보듬어 안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어린이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어린이의 어떤 점이 그러하냐고 묻는다.

 

 

                                  류연복 판화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천진난만(天眞爛漫), 경탄, 호기심…. 오늘 우리가 보는 현실 속의 아이들이 그러한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이들’이라는 기호를 꾸밈없이 순수하고 참된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이면 된다. 아이들은 근엄하지 않다. 젠체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켜야 할 자기가 없다. 그래서 늘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어린이’를 잃어버린 채 산다. 삶이 무거운 것은 그 때문이다.

 

늘 자기 확신에 가득 차서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는 사람들, 배울 것은 없고 가르칠 것만 있는 사람들,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익숙한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먼 사람들이다. 윌리엄 워즈워스는 어린이성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내 가슴 설레느니,/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쉰 예순에도 그러지 못하다면/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유종호 번역). 부드러움은 생명의 징조이고 경직됨은 죽음의 징조이다. 워즈워스가 역설적으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기도*

 

하나님,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더께처럼 내려앉아 우리 영혼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경탄할 줄 모르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삶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은 이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은 우리 영혼에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십시오. 묵은 땅을 갈아엎고 기쁨의 씨를 뿌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가슴 설레는 일들이 많아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posted by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5)

 

빛을 바라본다면 
   

 

 

가만 보니 창가에 놓아둔 화초의 여린 줄기들이 한 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 연습을 한 싱크로나이즈 선수들이 보이는 팔이나 발동작 같다. 우리는 하나, 모두가 같은 마음이랍니다, 작은 목소리 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유리창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가 빛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빛을 바라본다면 같은 빛 안에서 하나인 것이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밀리미터 렌즈처럼  (0) 2019.05.07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  (0) 2019.05.06
빛을 바라본다면  (0) 2019.05.05
사랑 안에 있으면  (0) 2019.05.04
비움과 채움  (0) 2019.05.02
하나님의 음성  (0) 2019.05.01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