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2)

 

 말씀의 과잉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으니 오래 전의 일인 셈이다. 해마다 전교인수련회를 가졌는데, 한 해는 수련회를 준비하며 엉뚱한 제안을 했다. 특강을 할 강사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기독교인을 아닌 이를 강사로 정하자고 했다. 밖에서 본 교회, 밖에서 생각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유익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그것이 정직한 거울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준비위원들이 동의를 했고, 우리는 그야말로 엉뚱한 강사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한인회장을 하고 있는 이였는데, 이야기를 듣고는 몹시 당황스러워했지만 얼마든지 편하게 평소의 생각을 이야기해 달라는 청을 마침내는 받아들였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지금껏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 자기는 교회나 기독교신앙에 대해 잘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한 말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제가 볼 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좋은 말씀을 너무 많이 듣는 것 같아요. 들은 말씀을 실천에 옮길 새도 없이요. 그러다 보니 듣는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이럴 순 없는 것일까요? 연 초에 말씀 하나만 듣고 그 말씀을 일 년 동안 힘써 지키는 것이요.”

 

뭘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라고 무시하기에는 찔리고 아픈 말이었다. 어느새 듣는데 익숙해진, 실천할 틈도 없이 듣고 또 듣는, 듣기만 하는, 그래서 귀만 높아진, 들은 말씀이 곧 자신의 삶인 양 살아가는, 말씀의 과잉 속에 말씀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 기독교인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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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1)

 

붓끝에서 핀 꽃송이

 

지나는 길에 잠깐 인우재에 들렀을 때, 소리가 찾아낸 것이 있었다. 네잎클로버였다. 누가 아빠의 딸 아니랄까 그랬는지, 소리도 네잎클로버를 잘 찾았다.


네잎클로버는 책갈피에 넣어두지 않으면 금방 시들고 만다. 책을 찾기 위해 서재 방문을 열었다. 무슨 책을 꺼낼까 망설일 때,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세설신어>였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좋겠다 싶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책이다.

 

 

 

 

유담(劉惔)이 강관(江灌)을 평했다.


"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잘 한다."

 

달변이나 능변의 재주는 없지만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그것을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이나 모두 경지에 든 사람이다 싶다. <세설신어>를 두고 ‘촌철살인의 붓끝에서 핀 꽃송이’라 하는 말에 공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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