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1)

 

 하나님의 천칭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던 시간, 하나님의 천칭 이야기를 했다. ‘천칭’(天秤)은 ‘천평칭’(天平秤)의 약자로, 가운데의 줏대에 걸친 가로장 양쪽 끝에 저울판을 달고, 한쪽에 달 물건을 놓고 다른 쪽에 추를 놓아 평평하게 하여 물건의 질량을 다는 저울의 일종이다. 


 


 

 

하나님의 천칭은 세상의 천칭과는 다를 것이다. 세상의 저울은 양쪽의 무게가 다를 경우 금방 저울이 반응한다. 저울의 한쪽은 솟고 한쪽은 가라앉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천칭은 다르다. 천칭 한쪽 저울판에 단 한 사람이 서고 반대편 저울판에 백 사람이 선다고 해도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수평을 유지할 것이다. 

설마 하늘의 저울이 고장이 났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시기 때문이다. 내 짧은 지식과 생각으로는 무한대는 무한대다. 무한대에 무한대를 더한다고, 무한대에 무한대를 곱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한 사람의 소중함을 그렇게 새길 수 있었으면,
하나님의 천칭을 신뢰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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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89)

 

길을 찾는 사람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4)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빌립보서 3:7-11)

 

바울은 길을 찾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 영적 자유에 이르는 길을 찾느라 늘 노심초사했다. 가급적이면 사람들이 선망하는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부심이 큰 사람이었다. 명문 지파인 베냐민 지파 출신에다가,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었고,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이전에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심지어는 오물로 여긴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이전에 그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은 한결같이 그의 자아를 강화해주는 것들이었다. 가문, 학식, 신분, 종교적 열심. 이런 것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소중한 것들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때가 많다. 신앙이란 자기를 비우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과정이다. 자랑스러운 게 많은 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모실 공간이 부족하다. 부활하신 주님의 빛이 바울의 내면에 비쳐드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왔던 게 지푸라기 강아지(芻狗)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늘 막힌 듯 답답하던 정신의 지평이 툭 트였다

 

 

 

그때부터 그는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어떤 고난, 시련도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발걸음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이전에는 벗어던지려고 했던 약함과 고통을 오히려 자랑거리로 여겼다. 자신의 약할 때가 곧 주님의 은혜가 유입되는 순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로움과 해로움이 이렇게 자리를 바꿨다.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말하지만, 바울 사도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10)라고 고백한다.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에서 사람들은 바알과 맘몬을 숭배하고 있다. 한완상 박사는 한국의 교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교회의 위기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이렇게 분석한다

 

교세의 양적 팽창과 대외적 선교열을 그토록 자랑하는 한국 교회와 교인의 삶 속에서 나사렛 예수, 갈릴리의 예수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위기라 하겠습니다. 그분의 체취, 그분의 숨결, 그분의 꿈, 그분의 정열, 그분의 의분, 그분의 다정한 모습을 교회 안에서 찾기 힘듭니다. 그러기에 밑바닥 인생의 그 억울한 고통을 함께 나누시면서 그들에게 사랑과 공의의 새 질서를 몸소 보여주셨던 갈릴리 예수가 더욱 그리워집니다.”(<예수 없는 예수 교회>, 7)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이 거룩한 지향을 다시 회복할 때 교회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다.

 

*기도*

 

하나님, 멋진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이웃들과 더불어 생명의 춤을 추며, 살아 있음을 경축하며 살고 싶습니다. 기쁘게 일하고, 신나게 놀고,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잿빛 우울에 감싸여 있습니다. 세상의 인력이 하늘을 향해 도약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무력화시키곤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만난 후 진정한 자유인이 된 바울 사도가 부럽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기다리오니, 성령이여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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