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91)

 

지나침을 경계하라

 

헛된 세월을 사는 동안에, 나는 두 가지를 다 보았다.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더라.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 왜 스스로를 망치려 하는가?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게 살지도 말아라. 왜 제 명도 다 못 채우고, 죽으려고 하는가? 하나를 붙잡되, 다른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전도서 7:15-18)

 

세상살이의 경험이 많은 코헬렛(전도자)은 삶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사람도 있고,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더라는 것이다. 이 불균형은 우리의 도덕 감정을 뒤흔들고 신의 존재를 회의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이 실종된 이 세상에서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전도서 7:16)고 권고한다. 적당히 세상 눈치나 보며 손해나지 않을 길을 택하라는 말일까? 그런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가 경고하려는 것은 ‘지나침’이다. 

 

그가 말하는 ‘너무 의롭게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에게 성실한 사람이다. 그는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그래서 깨끗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문제가 있다. 그는 자기가 자신에게 부과한 성실성이라는 이미지에 얽매인 채 살기에 늘 긴장상태에 있다. 자기 자신을 꾸짖고 탓하며 살다보니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백이 없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지 않던가. 그가 하는 말은 사사건건 지당한 말씀이고, 그의 행동은 나무랄 데 없지만, 그는 누군가의 품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바리새인들이야말로 너무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이라는 자기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잰다.  거기에는 여백이 없다.

 

 

 

                                사진/한희철(노고단)

 

하지만 예수님은 긍휼과 자비의 자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셨다. 그래서 상대의 장점을 잴 때는 마음이 푼푼하지만, 허물을 잴 때는 눈이 어두운 듯 보인다.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기준이 분명치 않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마련한 그런 헐거운 틈 사이로 생명의 바람이 불어오자 생명의 싹이 움터 나왔고, 그 싹이 자라 하나님 나라의 꿈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예수님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여백 때문이 아닐까?

 

살다보면 때로는 경계선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수녀들은 유대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나찌의 군인들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수녀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그들의 경건이 깨진 것은 아닐 것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위기에 빠뜨린다면 그것은 '지나침'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의로운 것도 문제이고, 지나치게 악한 것도 문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 극단은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다. 극단에 서면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삶의 방식을 가진 이를 품지 못한다. 나와 다르다고 하여 틀린 것은 아니다. 질서와 혼돈이 섞여 있는 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다. 

 

*기도*

 

하나님,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오늘 옳게 보이는 것이 내일은 그른 것으로 판명나기도 하고, 오늘 그릇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내일은 옳게 판명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시대의 한계, 인식의 한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이들의 판관이 되고 싶어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겸허한 마음을 심어 주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이웃들을 대하게 해주십시오. 여백이 없는 답답한 사람이 아니라 분명한 입장을 갖고 살면서도 여백이 큰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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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3)

 

같은 길을 가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면서 누가 가장 높은지를 다퉜던 제자들, 예수님은 모르실 거라는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두 알고 있었다. 제자들이 서로 다퉜다는 것도, 무얼 두고 다퉜는지도. 주님은 우리가 기도를 해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겨우 알아차리시는 분이 아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새가 없는 곳에서 말하면 되고, 쥐가 없는 곳에서 말하면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어디서 무슨 말을 하든 새와 쥐가 듣는 것이라면, 새와 쥐를 만드신 분이 우리가 하는 말을 모두 듣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말을 하건 모두 들으신다. 유익한 말도 들으시고, 무익한 말도 들으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고 있었지만,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얼마든지 같은 길을 가면서도 함께 가지 않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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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90)

 

거룩한 삶을 향한 열망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위기 19:1-2)

 

성경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를 거룩함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거룩함이란 속된 것과 구별되는 종교적 신비 혹은 덕목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거룩한 삶이란 한마디로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온 세상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가 거룩한 사람이다.  

 

성결법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세히 가르쳐준다. 우선 중요한 것은 부모 공경, 우상 숭배 멀리하기, 정성스런 제물 봉헌이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추수를 하면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밭 한 모퉁이를 남겨두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는 것, 도적질·속임수·거짓말을 멀리하는 것, 힘있다고 해서 이웃을 해치거나 이웃의 몫을 가로채지 않는 것, 듣지 못한다고 해서 귀먹은 사람에게 저주하지 않는 것, 앞 못보는 이 앞에 장애물을 놓지 않는 것,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지 않는 것, 다른 이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 것, 힘없는 이웃을 막다른 골목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것,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보았을 때는 애정을 가지고 책망하는 것 등이다. 

 

 

 

간디의 제자 가운데 비노바 바베는 인도에서 간디 이상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분이다. 그의 정신 세계의 바탕을 만들어준 이는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거지가 문간에 찾아오면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체격이 건장한 거지 한 사람이 찾아왔고 어머니는 평소대로 그에게 적선을 베풀었다. 비노바는 못마땅하여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 사람은 아주 건강해 보여요. 그런 사람에게 적선을 하는 건 게으름만 키워주는 것이라구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그들에게도 좋지 않은 거예요. [기타]에도 나오잖아요. 순수한 선물은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구요.”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아주 차분하게 대답하셨다. 

 

“바냐,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 만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판단한단 말이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문간에 찾아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다 하나님처럼 존중해 주고 우리의 힘이 닿는 대로 베푸는 거란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니?”(칼린디, 『비노바 바베』, 김문호 옮김, 실천문학사, p.65)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웃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쾌락의 도구로 삼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하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타자를 물화시키는 것이 능력처럼 여겨지는 시대이기에, 거룩한 삶을 향한 투신이 더욱 절실한 오늘이다. 

 

*기도*

 

하나님, 욕망의 벌판을 질주하는 동안 우리 영혼은 묵정밭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거룩한 삶의 열망은 간데 없고, 온갖 부정적 삶의 습성만이 우리를 온통 사로잡고 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우거진 우리 영혼의 뜨락이 스산하기만 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통해 거룩한 삶의 열망이 우리 속에서 되살아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완벽한 사랑과 지혜 안에서 우리 삶을 재정비하게 해주십시오.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손님으로 여기며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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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2)

 

답장 
 
"한 목사님
갑자기 그리움 탑니다.
바람이 살랑거리는데
해가 막 넘어갑니다.
홍순관님의 노래 한 곡 들으며 해를 보냅니다."

 

 

 

멀리 부산에서 보내온 문자, 기쁨지기였다. 또 다시 여름이 다가오고 있고, 여름이면 어김없이 모이는 모임이 있다. 올해로 스물두 번째를 맞는 독서캠프다. 올해는 이야기 손님으로 김기석 형과 함민복 시인을 모시기로 했단다. 독서캠프는 유난을 떨지 않아 늘 소박하지만 소중한 밥상이다.

 

분주하게 하루를 보낸 뒤 아침에 답장을 보낸다.

 

"길을 쓸고 마루를 닦는 이의 마음에 어찌 그리움이 없겠습니까?
먼 산 볼 때 누군가 빙긋 웃는,
그 선한 웃음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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