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92)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말하기를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줄 테니 가만히 있거라' 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7:1-5)

 

 

예수님은 모든 비판 혹은 판단을 금지하시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금하시는 심판 혹은 비판은 한 존재에 대한 미움과 멸시에서 비롯된 판단이다. 건전한 비판은 꼭 필요하다. 누군가로부터 질정(叱正)을 받지 않고는 우리 정신이 자랄 수 없다. 남에게 배울 생각이 없는 닫힌 정신만이 비판받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것이라 해도 모든 비판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없는 질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물론 존경과 애정이 없는 비판이라고 해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귀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정한 비판, 애정이 담기지 않은 비판 앞에 설 때 자기 방어적이 되게 마련이다. 자기 '에고'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자기를 지키려한다는 말이다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듯이 존재의 변화는 사랑의 품 안에서만 일어난다. 오지랖은 넓지만 팔이 짧은 게 문제이다. 누군가를 껴안을 때 팔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절로 흔흔해진다. 그러나 가시처럼 다가서는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이들과 만나면 우리 영혼은 피투성이로 변한다예수님은 누군가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이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들보'는 매우 충격적인 대조이다. 흑백의 대비만큼이나 선명하다. 어쩌면 이것은 자기의 허물을 더 통렬하고 아프게 돌아보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남의 허물은 크게 보고,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처럼 살고 있다. 내게는 못나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소중한 사람이다. 왠지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런 사람이다. 이 마음 혹은 이 눈 하나 얻지 못해 인생이 무겁다. 

 

인도 사람인 비노바 바베는 부단 운동을 전개했다. 부단 운동이란 지주들로 하여금 땅 없는 사람들을 위해 땅의 일부를 헌납하도록 하는 운동이다. 그는 부자들에게 만일 아들이 다섯이라면 여섯이라고 생각하고 땅을 여섯으로 나눠 그 한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권고했다. 거의 불가능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그는 많은 땅을 헌납받아 가난한 사람들을 정착시켰다. 부자들을 설득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그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것은 옳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 속에 있는 선의 씨앗을 보았고, 그것이 싹을 틔우도록 도왔다

 

"내가 지주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는 많은 잘못과 단점이 있고, 그의 이기심은 높은 담벼락처럼 완강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작은 문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선량함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문을 찾을 의지만 있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그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마치 담벼락 앞에 서있는 것처럼 암담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도 작은 문은 있게 마련이다. 그 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무지와 무능 때문이다. 형제의 눈에서 티끌이 아니라 눈물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어느 시인은 남의 상처에 들어앉아 그 피를 빨아 사는 기생충이면서 아울러 스스로 또한 숙주”(정현종)인 인간이 두루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가끔 남을 비난하고 비판함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유혹에 시달립니다. 남들이 내게 가하는 비판은 아파하면서도 내가 남에게 가하는 비판에 가차가 없는 것은 우리 속에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웃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따뜻한 마음을 주십시오. 이웃들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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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4)

 

 전도는 전도다  
  

제자들은 길에서 다퉜다. 누가 가장 높은지를 두고서. 설마 모르시겠지 했지만 예수님은 아셨다. 무슨 일로 다퉜는지를 묻자 유구무언이다. 다투기 바로 전, 예수님은 당신이 당해야 할 고난을 일러주신 터였으니 스스로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


그런 뒤 어린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아주시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영접하면, 그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것보다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꼴찌가 되라는 것은 세상의 기준과는 정반대다. 어린이를 영접하라는 것도 세상 물정과는 거리가 멀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어린이를 영접하라니 말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아람어로 ‘어린이’는 ‘종’과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이다. 

전도는 전도다. 
傳道는 轉倒인 것이다. 
가치의 顚倒에서 진정한 傳道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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