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 맑은 사람

김기석의 새로봄(143)

 

영이 맑은 사람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 때에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악한 귀신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서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마가복음 1:21-28)

 

안식일에 주님은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다. 마가는 그 가르침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만 들려줄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가복음 1:22) 여기서 ‘놀랐다’(ekkepresento)라고 번역된 단어 속에는 ‘때리다’는 뜻의 ‘플렛소’가 들어 있다. 이 단어는 ‘수동태’로 표기되어 있으니 단순히 놀랐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고 번역하는 게 옳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일까? 마가는 그 까닭을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가는 그 권위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채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회당 안에는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 ‘더러운 귀신’이라 하지만 사실은 더러운 영(프뉴마)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더러운 영’이라 말할 때 마가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마가복음 7장 20-23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있다면서,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악한 시선, 모독, 교만, 어리석음 등이 더러운 영이라 말씀하셨다. 이렇게 보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세속에 복무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주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다 충격을 받았다. 이제까지 쓰고 있던 위선의 가면이 송두리째 벗겨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은 큰 소리로 외쳤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마가복음 1:24) 영은 영을 알아보는 법, 더러운 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간파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해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명령하셨다. 그의 속에 들어 앉아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더러운 영의 지배는 끝났다는 선언인 셈이다. 오직 거룩하고 맑은 영만이 더러운 영을 쫓아낼 수 있다.  

 

움브리아의 작은 마을 구비오(Gubbio)에는 사람들과 가축들을 해치는 사나운 늑대 한 마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무서워서 바깥출입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야기를 들은 프란체스코는 사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늑대가 있는 숲을 찾아갔다. 늑대가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다가오자 프란체스코는 늑대를 조용히 꾸짖으며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해치지 말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늑대는 사람들과 가축들을 해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기특한 늑대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주었다. 늑대가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매우 슬퍼했다. 그 늑대는 성인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표징이었기 때문이다. 악한 귀신을 복종시키고, 폭력을 잠재우는 맑은 영의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선구이다.

 

*기도*

 

하나님, 더러운 영이 준동하는 시대입니다. 폭력과 혐오가 마치 미세 먼지처럼 우리 일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착한 이들이 조롱받이가 되고, 순진한 사람들은 영악한 이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악한 영을 향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셨던 주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물리쳐 주시고 주님의 맑은 영을 우리 속에 채워 주십시오. 마음 따뜻한 사람들, 생명을 아끼는 사람들이 귀히 여김을 받는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도록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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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의 심방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03)

 

 열 번의 심방

 

심방 중에 요양원에 계신 권사님을 찾아뵙고 돌아와서 편지를 썼던 것은, 문득 떠오르는 장로님과 권사님 때문이었다. 요양원의 권사님이 지난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포대기에 아기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장로님과 권사님이 떠올랐다. 오래 전부터 교분을 갖고 있는 두 분은 한 평생 살아오며 그러했듯이 지금 가장 지고지순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장로님은 자식들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권사님을 끝까지 집에서 돌보신다. 사랑 아니면 도무지 불가능한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다.

 

 

 

 

마침 상반기 심방을 모두 마친 어제 저녁,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내드린 편지를 받고는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받은 편지를 권사님께 전하며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평소와는 달리 권사님이 많은 말을 하시더라는 것이었다. 어떤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표현이지만 마음이 많이 들뜬 듯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는데, 통화를 하는 중에도 권사님의 목소리는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 왔다.

 

자주 찾아 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자 장로님이 대뜸 말을 막으신다. 목사님은 목회 일에 전념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그러면서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셨다.

 

“오늘 받은 편지는 목사님 심방을 열 번 받은 것과 다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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