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 참으로 보는 것이 뭔가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고 내면적 사고도 틀려지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들께서 왜 자극적인 드라마나 세상적 가치의 욕망이 되는 것을 보지 말라는 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시'라는 텍스트가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옳고 좋다고 느낄 때가 저에게ㅂ도 오긴 오는 군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09.20 09:01
  • 성경이 시 형태로 기록된 곳이 꽤 여러 곳이지요.
    서로의 의미를 풍성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한희철 2019.09.20 19:5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4)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이따금씩 책장 앞에 설 때가 있다.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 책 구경을 하는 것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풍경 지나가듯, 가만 서 있는 내 앞으로 책 제목들이 지나간다. 분명 마음에 닿아 구했을 책들이고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 책이겠지만, 새롭게 말을 걸어오는 제목들은 의외로 드물다. 특별한 일 아니면 나를 깨우지 마세요, 단잠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오늘도 그랬다. 한 달 여 쉬었던 대심방을 가을을 맞아 다시 시작하여 하루 심방을 마치고 났더니 약간의 오한이 느껴진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것이 으슬으슬 춥다. 몇 가지 일이 겹쳐 마음이 편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릴 겸 커피 한 잔을 타며 음악을 틀었다. 지네트 느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데, 풋풋하고 자유롭다. 그렇게 책장 앞에 섰을 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노르웨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하우게의 시선집이다. 책을 여니 한 그루 고목의 그루터기처럼,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앞에서 말을 잊은 침묵처럼 앉아 있는 저자의 흑백 사진 옆으로 짤막한 시 하나가 적혀 있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 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마지막 구절이 마음을 맴돈다. 쉬 사라지지 않고 마음 주변을 서성인다.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처럼, 뭔가 갈증을 알고 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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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끈질긴 모험

김기석의 새로봄(194)

 

사랑이란 끈질긴 모험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요한일서 2:15-17)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다 한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 찾아오기에 피하기 어렵고, 그 충격은 몸과 마음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왔다가 자기 맘대로 떠나가는 사랑 때문에 열병을 앓는 이들이 많다.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것은 모든 생명 현상의 뿌리이다. 세계적인 영성가로 명성을 얻었던 헨리 나우웬 신부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도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주목을 받고 싶어했고, 대중들에게 잊혀질까봐 두려워했다. 따뜻한 시선을 언제나 그리워했다. 그런 여린 영혼의 소유자인 그에게 깊은 안도감을 주곤 했던 것은 어머니의 눈길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 내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사제가 되었을 때, 미국에서 살기 위해 떠났을 때 바라보셨던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고통이 공존하는 사랑의 눈으로 말이다. 아마도 그 눈이, 사랑과 슬픔이 공존하는 그 눈이, 늘 나를 감동시켰던 것 같다."(마이클 앤드루 포두, <상처 입은 예언자 헨리 나우웬>, 173쪽)

 

 

 

 

 

사랑은 이처럼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사랑의 방향성이다. 옛 성인은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성경은 두 방향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다. 요한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을 다른 말로 표현했다. '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이 그것이다. 이 셋은 한결같이 자기가 중심이 되려는 욕망과 관련된다. 자기가 중심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구는 자원일 뿐이고,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는 이용 가능한 연줄이다. 연줄로서의 역할이 끝나면 관계도 끝난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와 만나는 사람을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한다. 누군가를 수단으로 삼을 때 이익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의 평강은 얻을 수 없다. 우리 속에 있는 외로움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은 ‘서로 함께’(Miteinander)의 존재이다. 너 없이는 나도 없다는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알랭 바디우는 '사랑이란 끈질긴 모험'이라 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사랑의 관계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넘어서야 한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견디고 모든 것을 함께 겪어내야 한다.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한다. 사랑의 모험에 나설 용기가 없다면 인생은 적막할 뿐이다.

 

*기도

 

하나님, 우리를 사랑의 세계로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리를 걷고 있는 이들의 얼굴에 드리운 쓸쓸함을 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도무지 사랑하기 어려운 이들이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짓밟는 이들,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사랑을 선택하며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사랑의 모험을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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