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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by 한종호 2019. 9. 2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4)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이따금씩 책장 앞에 설 때가 있다.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 책 구경을 하는 것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풍경 지나가듯, 가만 서 있는 내 앞으로 책 제목들이 지나간다. 분명 마음에 닿아 구했을 책들이고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 책이겠지만, 새롭게 말을 걸어오는 제목들은 의외로 드물다. 특별한 일 아니면 나를 깨우지 마세요, 단잠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오늘도 그랬다. 한 달 여 쉬었던 대심방을 가을을 맞아 다시 시작하여 하루 심방을 마치고 났더니 약간의 오한이 느껴진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것이 으슬으슬 춥다. 몇 가지 일이 겹쳐 마음이 편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릴 겸 커피 한 잔을 타며 음악을 틀었다. 지네트 느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는데, 풋풋하고 자유롭다. 그렇게 책장 앞에 섰을 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노르웨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하우게의 시선집이다. 책을 여니 한 그루 고목의 그루터기처럼,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앞에서 말을 잊은 침묵처럼 앉아 있는 저자의 흑백 사진 옆으로 짤막한 시 하나가 적혀 있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나의 갈증에 바다를 주지 마세요,
빛을 청할 때 하늘을 주지 마세요,
다만 빛 한 조각, 이슬 한 모금, 티끌 하나를,
목욕 마친 새에 매달린 물방울 같이,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마지막 구절이 마음을 맴돈다. 쉬 사라지지 않고 마음 주변을 서성인다.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처럼, 뭔가 갈증을 알고 있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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