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퍼의 용도

  • 요즘은 정말 조금만 티가 나고 흠 잡히면 죽일려고 합니다. 언행이나 행동이나 말이죠. 각박한 세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02 08:28
  • 그러게요,
    범퍼의 용도를 인정하면 될 텐데요.

    한희철 2019.10.03 07:3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7)

 

범퍼의 용도

 

교우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올 때였다. 운전을 할 전도사가 주차한 차를 후진하다가 뒤에 있는 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와보니 그런 일이 있었다. 부딪친 차를 보니 별 티가 나지 않았다. 워낙 부딪친 흔적이 많은 차였다. 교회 승합차에는 어떤 흔적도 보이질 않으니 경미한 충돌이라 여겨졌다. 그래도 사고는 사고, 게다가 우리는 교회 차가 아닌가. 주인을 찾았고 한참을 기다려 만났다. 이야기를 듣고 차를 이리저리 살핀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냥 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인데, 슬그머니 사라지니 당황스러웠다.


일단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사진을 찍은 뒤 사고를 당한 차 주인에게 보험으로 처리한다는 말을 하고 가라고 했다. 다시 주인을 찾아 그런 뜻을 전하고 돌아섰다. 불편한 마음으로 운전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돌아오는 길 운전은 전도사 대신 부목사가 했다.

 

 

 

 

 

뒤에 앉은 전도사 마음이 얼마나 불편할까 싶어 전에 있었던 일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심방 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 때였다. 지하에 주차한 차를 부목사가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열쇄를 건넸는데 차를 가지고 온 부목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오는 중에 차를 벽에 긁었던 것이었다. 들어갈 때 보니 유난히 통로가 좁은 지하주차장이었다. 난감해하는 부목사에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범퍼는 원래 긁히라고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기를 참 잘했다 싶은 순간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마음이 아주 안 쓰린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2) 2019.10.04
대뜸 기억한 이름  (2) 2019.10.03
범퍼의 용도  (2) 2019.10.02
거오재 노오재  (2) 2019.10.01
보이지 않는 길  (2) 2019.09.30
수고를 안다면  (2) 2019.09.29
posted by

오만한 권력의 몰락

김기석의 새로봄(186)

 

오만한 권력의 몰락

 

르호보암 왕은 부왕 솔로몬이 살아 있을 때에, 부왕을 섬긴 원로들과 상의하였다. “이 백성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경들의 충고를 듣고 싶소.”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임금님께서 이 백성의 종이 되셔서, 그들을 섬기려고 하시면, 또 그들이 요구한 것을 들어 주시겠다고 좋은 말로 대답해 주시면, 이 백성은 평생 임금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 원로들이 이렇게 충고하였지만, 그는 원로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기와 함께 자란, 자기를 받드는 젊은 신하들과 의논하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백성들이 나에게, 부왕께서 메워 주신 멍에를 가볍게 하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소. 이 백성에게 내가 어떤 말로 대답하여야 할지, 그대들의 충고를 듣고 싶소.” 왕과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은,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메우신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임금님께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는 이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내 새끼 손가락 하나가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다. 그러나 나는 이제 너희에게 그것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겠다. 내 아버지는 너희를 가죽 채찍으로 매질하였지만, 나는 너희를 쇠 채찍으로 치겠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왕이 백성에게 사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하였으므로, 여로보암과 온 백성은 사흘째 되는 날에 르호보암 앞에 나아왔다. (열왕기상 12:6-12)

 

왕위를 계승한 르호보암은 두렵고 떨렸을 것이다. 통치 경험은 전무하고, 다스려야 할 나라는 컸다. 어느 날 여로보암을 대표자로 한 북부 지파 동맹 사람들이 세겜에 있는 왕을 찾아왔다. 그들은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부과했던 세금과 노역이 너무 과중하여 견딜 수 없으니 그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청했다. 솔로몬 시대의 영화로움은 백성들의 희생을 통해 이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당황한 르호보암은 먼저 선왕과 함께 나라를 일으켜 세웠던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러자 그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고언한다.

 

 

 

 

 

원로들은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기는 했지만, 아직 출애굽 정신을 다 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왕에게 주어진 권한은 백성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일이라는 사실, 백성들이 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백성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점잖게 일깨워준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그 충언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벗들에게도 충고를 구한다. 성서 기자는 그 젊은 관료들이 누구인지를 두 가지 말로 표현한다. “그와 함께 자란”, “그를 받드는.”

 

그들은 왕실 가까이에 머물면서 온갖 특권적인 삶을 누려온 이들이다. 또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는 길임을 너무나 잘 아는 이들이다.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과중한 조세 부담에 허리가 휜 민중들의 처지를 알 리가 없다. 그들에게 세상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로 나뉠 뿐이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말을 듣다가는 통치를 할 수 없다면서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는 그 젊은이들의 조언을 달콤하게 들었다. 몰락은 그렇게 시작된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남 좋을 대로 사는 사람이다.

 

르호보암은 고통을 호소하며 부담을 경감시켜달라는 백성들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았다.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는 저 아래 땅의 사람들이 겪는 삶의 애환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땅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불의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세상과 연루되는 것을 꺼리지 않는 분이시다. 성육신의 신비는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가르쳐준다. 르호보암은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이전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고, 쇠 채찍으로 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멍에’와 ‘채찍’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것은 출애굽 정신에 대한 부정의 상징이 아닌가. 어느 사이에 이스라엘은 새로운 애굽이 되고 만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갈리면서 멍에와 채찍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르호보암은 자기에게 위임된 권한이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임을 잊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오만한 권력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결여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십시오. 아름답고 장엄해 보이는 것들 속에 깃든 약자들의 피와 눈물과 한숨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특권의 포기야말로 공동체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기둥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쓴 소리보다 단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역사를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던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 > 김기석의 새로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가뭄을 겪으며  (1) 2019.10.06
잔치는 끝나고  (1) 2019.10.04
오만한 권력의 몰락  (1) 2019.10.02
소명을 견주지 말라  (1) 2019.10.01
지향이 달라지면  (1) 2019.09.30
복과 화 사이  (1) 2019.09.29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