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일

  • 함께 하는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찌게속에 밥숟가락이 함께 공유했던 음식문화 임에도 그렇게 다른 혈통이나 지역을 강조하며 으르렁 싸우는 것을 보면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혈통하면 유대인들인데, 유대인들도 밥숟가락을 공유했을까요? 단결하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06 11:16
  • 한 그릇에 담긴 찌개를 같이 먹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 아닐까 싶은데요.

    한희철 2019.10.06 20:14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1)

 

 아름다운 일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누는 우정을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저만치 앞서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오래된 우정인 양, 오래갈 우정인 양 흑백으로 찍는다.

 

 

 

 


 

 

나중에 보니 사진이 좋다.

한 장에는 두 팔을 벌린 모습이 담겼고,

다른 한 장에는 슬그머니 옆을 보며 빙그레 웃는 웃음이 담겼다.

 

함께 하는 즐거움이 오롯이 전해진다.
아름다운 우정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는 구석  (2) 2019.10.08
그레발을 두자  (2) 2019.10.06
아름다운 일  (2) 2019.10.04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2) 2019.10.04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2) 2019.10.04
대뜸 기억한 이름  (2) 2019.10.03
posted by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 정직한 성찰!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06 04:52
  • 그나마 거기에 희망이 있지 싶습니다.

    한희철 2019.10.06 06:4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0)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누군가의 설교를 듣는 일은 내게 드문 일이다. 바쁜 탓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비교하려는 마음을 스스로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심사가 못된 탓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듣게 된 설교가 있다. 새문안교회 이상학목사의 설교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4)–사랑과 정의 사이에서’(마태복음 5:20)라는 제목이었다. 자신이 속한 교단 안에서 일어난 M교회의 담임목사 세습 문제를 다루는 설교였다. “성경적 설교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용서해 달라”며 시작했지만, 내게는 더없이 성경적으로 들렸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 없었지만 위선과 탐욕과 무지의 견고한 벽을 깨뜨리는 설교이기도 했다.

 

 


 

설교자는 이번에 벌어진 일이 1938년에 교단에서 결정한 신사참배보다도 더욱 더 치욕적인 결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신사참배는 압력에 의해서 결정을 했지만, 이번 결정은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설교를 끝까지 들으며 듣는 내내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웠다. 설교 말미에 언급한, 동기 목사 이야기도 그랬다.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 동기 목사가 노숙자에게 전도지와 빵을 건넸단다. 노숙자가 전도지에 있는 교단 마크를 보더니 “어? 이거 세습한 교회가 속한 교회 아니야?” 하며 목사에게 빵을 집어 던졌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소개하며 설교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이 이슈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입니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고맙다는 마음이 든 것은 그런 정직한 성찰 때문이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레발을 두자  (2) 2019.10.06
아름다운 일  (2) 2019.10.04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2) 2019.10.04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2) 2019.10.04
대뜸 기억한 이름  (2) 2019.10.03
범퍼의 용도  (2) 2019.10.02
posted by

잔치는 끝나고

김기석의 새로봄(187)

 

잔치는 끝나고

 

벨사살 왕이 귀한 손님 천 명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과 더불어 술을 마셨다. 벨사살 왕은 술을 마시면서 명령을 내려서, 그의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 온 금그릇과 은그릇들을 가져 오게 하였다. 왕과 귀한 손님과 왕비들과 후궁들이 모두 그것으로 술을 마시게 할 참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 성전에서 가져 온 금그릇들을 꺼내서, 왕과 귀한 손님과 왕비들과 후궁들이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서,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였다.(다니엘 5:1-4)

 

벨사살 왕은 바벨론 제국의 쇠퇴기에 등장한 사람으로, 그 이름은 ‘벨이시여, 임금을 지키소서’라는 뜻이다. ‘벨’은 바벨론의 최고신인 마르둑의 다른 이름이다. 벨사살은 어느 날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 귀한 손님 천명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거나해져 기분이 한껏 고조된 벨사살은 자기 위세를 만방에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선왕인 느부갓네살이 전쟁 중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금그릇과 은그릇들을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거기에 술을 따라 마셨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기 힘에 대한 과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소국에 대한 조롱인 동시에 야훼에 대한 모독이었다. 스스로를 전능자로 인식하는 이의 부박함이여!

 

가장 거룩한 일을 위해 구별했던 성전 기물을 술자리의 여흥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이 야훼에 대한 모독과 조롱인 것은 그들이 한 다음 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서,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였다.”(다니엘 5:4) 그들은 바벨론 제국과 그 신들의 우월함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순간 흥겹던 잔치는 공포로 변하고 말았다.

 

갑자기 사람 손 하나가 나타나더니 촛대 앞에 있는 왕궁 석고 벽 그러니까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왕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제국의 모든 지혜자들이 그 글씨를 해독하려고 애써보았지만 허사였다. 이것은 제국이 자랑하던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징표였다. 오직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인 다니엘만이 그 글씨를 해독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기록된 글자가 ‘메네 메네 데겔’과 ‘바르신’(5:25)이라고 말하며 그 뜻을 풀어준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임금님의 나라의 시대를 계산하셔서, 그것이 끝나게 하셨다는 것이고, ‘데겔’은, 임금님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것이고, ‘바르신’은 임금님의 왕국이 둘로 나뉘어서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뜻입니다.”(다니엘 5:26-27)

 

사실 ‘메네’ ‘데겔’ ‘바르신’이라는 글자 속에 그렇게 심오한 뜻이 담겨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다니엘이 암호화된 단어를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다. 성경은 바로 그 날 밤에 벨사살이 살해되고, 메대 사람 다리우스가 그 나라를 차지하였다고 전한다. 흥겨운 잔치, 벽에 쓰인 글씨, 심판 예고, 심판의 실현이라는 사건의 흐름이 이렇게 신속할 수가 없다. 과시적인 소비, 흥청망청, 경외심이 없는 삶의 결국은 파멸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인상 깊게 들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도

 

하나님, 가끔은 자기 권력을 과신한 나머지 하나님을 모독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버릇입니다. 권력의 들큼함에 취하면 실상을 볼 수 없습니다. 독선과 오만에 빠진 권력은 하나님의 주권을 넘보기도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어진 인생의 순간순간을 삼가는 마음으로 살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위임된 힘과 권력을 오직 사랑과 정의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게 해주십시오. 아멘.

posted by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 신앙의 초보자로서 진짜 본다는 것이 눈 말고 다른 것에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04 08:40
  • 마음에서요!

    한희철 2019.10.06 06:4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9)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린 손자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하나님을 본 적이 있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도 진지하게 손자에게 대답을 했다.


“얘야, 나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단다.”

 

성 베네딕토는 말했다.

 

 “수도원의 부엌세간과 헛간의 연장을 다루는 것은 제단의 제구를 다루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도로테오의 말은 지극히 단순하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로렌스의 말은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지는 바윗덩어리 같다.

 

“낙원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가져야 할 곳은 지옥입니다.”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말은 가만 그늘을 비추는 햇살처럼 다가온다.

 

“하나님은 농부들의 호미 끝에, 학생들의 연필 끝에, 광부들의 곡괭이 자루 끝에, 밥 짓는 여인들의 젖은 손끝에 계심을 기억하라!”

 

어서 오기를, 마침내 오기를,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시간이!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일  (2) 2019.10.04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2) 2019.10.04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2) 2019.10.04
대뜸 기억한 이름  (2) 2019.10.03
범퍼의 용도  (2) 2019.10.02
거오재 노오재  (2) 2019.10.01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