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빈자리를 보니?

  • 저도 공감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21 09:31
  • 한결같은 걸음, 반갑습니다.

    한희철 2019.10.21 20:1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3)

 

 왜 빈자리를 보니?

 

영월동부교회에서의 집회는 새벽, 낮, 저녁, 하루 세 번 열렸다. 시절이 바뀌어 요즘은 하루 세 번 모이는 집회가 드물어졌지만 기꺼이 동의를 했다. 다음 주 정릉에서 열리는 말씀축제에서도 열 번 말씀을 듣기로 했다. 시편의 바다를 헤엄치는 데는 열 번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에 세 번을 모이니 강사도 강사지만 교우들로서도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가을걷이의 계절이기도 하고, 낮에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이런저런 개인의 일들이 왜 없겠는가?

 

 

 


 

낮 집회가 특히 그랬다. 때마침 지방연합성회와 기간이 겹쳐 더욱 그렇지 싶었다. 빈자리가 마음에 걸렸던지, 사회를 보던 선배 목사님이 몹시 아쉬워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오래 전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다.

 

가문 날이 이어지다가 기다리던 비가 온 주일이었다. 많은 교우들이 예배당 대신 밭을 찾았다. 덕분에 주일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엔 빈자리가 많았다. 목회자에게 빈자리는 커다란 웅덩이처럼 다가온다. 눈길이 빠지고 마음이 빠진다. 빈자릴 보며 허전한 마음으로 설교를 시작할 때였다.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얘야, 너는 왜 빈자리를 보니? 나는 바쁜 중에도 예배드리러 나온 내 백성들을 보는데.’

 

필시 그것은 주님의 음성이었으리라. 그 때 들었던 음성 이야기를 했고, 더 이상은 빈자리에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더욱 가난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은총을 누릴 수 있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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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김기석의 새로봄(190)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의인이 바라는 것은 좋은 일뿐이지만, 악인이 기대할 것은 진노뿐이다. 남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아끼는데도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 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 곡식을 저장하여 두기만 하는 사람은 백성에게 저주를 받고, 그것을 내어 파는 사람에게는 복이 돌아온다. 좋은 일을 애써 찾으면 은총을 받지만, 나쁜 일을 애써 추구하면 나쁜 것을 되받는다(잠언 11:23-27).

 

“의인이 바라는 것은 좋은 일뿐이지만, 악인이 기대할 것은 진노뿐이다.” 의인은 자기 분수를 알고 사는 사람이다. 남을 배려하기에 다른 이의 몫을 대신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억지가 없기에 자유롭고, 자유롭기에 명랑하다. 그는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한다. 필요한 이에게 계산하지 않고 준다. 사람은 아끼지만 재물은 아끼지 않는다. 남에게 주는데도 그는 더욱 부유해진다. 그런데 마땅히 쓸 것까지 아끼는데도 가난해지는 사람도 있다. 움켜쥐지만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슬금슬금 줄어들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었다. 하나님은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대로 하자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출애굽기 16:17-18). 그 지시를 어기고 많이 거두어들인 사람들도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나? 남겨둔 것에서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다.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 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고 말한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축복의 사람’(네페쉬 베라카)이다. 다른 이를 복되게 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구원사의 일부가 되라고 부르시면서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창세기 12:3b)이라고 약속하셨다. 바울 사도도 성도들에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면서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사도행전 20:35)라고 말했다.

 

꽃밭에 넉넉히 물을 주는 사람은 향기를 되돌려 받게 마련이다. 내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하여 목마른 이들을 외면할 때 또 다른 목마름이 찾아온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흘러야 하는 법이다. “좋은 일을 애써 찾으면 은총을 받지만, 나쁜 일을 애써 추구하면 나쁜 것을 되받는다”(잠언 11:27). 사람은 누구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 땀 흘려 수고한 일에 결실이 없다고 낙심할 것 없다. 때가 이르면 결과는 나타나게 마련이다.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기도

 

하나님, 많은 이들이 선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삽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욕망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목격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겠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누룩이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심는 사랑과 평화와 생명의 씨가 세상을 밝히는 꽃으로 피어날 날이 올 것임을 믿습니다. 이런 우리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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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 참으로 멋진 만남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20 11:13
  • 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만남이었습니다.

    한희철 2019.10.20 19:2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2)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두 사람을 본 것은 막 찻집에서 나왔을 때였다. 부흥회 셋째 날, 낮 집회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찻집을 찾았다. 동강 변에 있는 찻집이었는데, 2층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빼어났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들기 시작하는 붉은 빛이 곳곳에 스미고 있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말씀을 듣는 교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고마움으로 말씀을 듣는 교우들이 고마웠다.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찻집 앞 느티나무 앞에서 두 사람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품이 넓은 느티나무와 저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잘 익은 햇살, 그 속에서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는 가을 풍광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함께 차를 마신 선배 목사님과 교우들은 잘 쉬라는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몸은 피곤했지만 쉬기 위하여 숙소로 돌아오는 대신 아코디언 연주자에게로 다가갔다. 마침 차에 카메라가 있어 챙겨서 갔다.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려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의 연주를 곁에서 들어도 좋을지, 연주하는 사진을 찍어도 좋을지를 물었더니 얼마든지 좋다고 했다. 빼어난 가을 경치만큼 두 사람의 마음도 흔쾌했다. 이어지는 몇 곡의 연주들, 그 중에서도 El Cóndor Pasa가 압권이었다. 아코디언과 너무도 잘 어울렸는데, 실제로 강가에선 백로인지 왜가리인지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새 마음이 가까워진 탓일까, 한 곡을 신청해도 좋을지를 물었더니 제목을 묻는다.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겠다 싶은 곡이 떠올랐던 참이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청했더니 즉흥연주를 하는데, 막힘이 없다.


 

마침 차에는 내가 쓴 책이 두 권 있었다. 돌아서기 전에 좋은 연주를 들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었다. 책을 전하기 전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하며 내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연주를 한 한 사람이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장로교 고신파 목사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작고 외진 교회에서의 목회를 고집했던. 나에게 영월에 사느냐 물어 집회 인도 차 왔고, 수요일 저녁까지 말씀을 나눌 예정이라 대답을 했다. 그때 그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괜찮으면 저녁 집회에 참석하여 아코디언으로 찬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대답할 말은 아니었지만 선배 목사님이 거절하실 일은 결코 아니다 싶었다.

 

저녁 집회 시간, 그는 정말로 교회를 찾아와 아코디언으로 여러 곡 찬양을 했다. 마음속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코디언 연주라면 우리나라에서 2등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하루에 연습을 6시간 이상 한다고 했다. 그날 밤 세종시로 내려가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찬양 후 함께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에는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 하지만 복되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우연처럼 주어진 만남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가을 햇살 가득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청했던 노래처럼,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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