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목소리

  • 한분 한분 도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드실 것 같습니다.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셨겠네요.

    이진구 2020.01.02 15:55
    • 몸은 고되어도
      마음이 흔쾌한 일이 있으니까요.

      한희철 2020.01.03 07:51 DEL
  • 잊지 못할 신앙의 추억이 될 거 같습니다.
    가라앉은 건 목소리만이 아닐 테고요.

    신동숙 2020.01.02 21:09
    • 함께 했던 시간을 의미 있게
      고마움으로 새기는 교우들이 저도 고마웠습니다.

      한희철 2020.01.03 07:52 DEL
  • 목사님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정릉교회에서 말씀 전해주시기를 늘 바라고 또 바랍니다

    감사 2020.01.07 12:16
    •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 안에서 동행하는 즐거움을 내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한희철 2020.01.09 09:23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7)

 

가라앉은 목소리

 

송구영신예배를 앞두고 끝까지 망설인 시간이 있었다. 도유식이었다. 두어 달 전 성북지방 목회자 세미나 시간에 강사로 온 감신대 박해정 교수는 교회에서 도유식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간으로 도유식을 꼽았다. 진정한 예배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경험에 의하면 도유식은 참 은혜로운 예식이다. 기름을 이마에 바르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가 있겠다 싶다. 물론 내 짐작이다. 하나는 성별이다. 주님은 모세에게 성막과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바르게 하셨다.(레위기 8:10)


다른 하나는, 치유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아픈 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야고보서 5:14)


또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은 것이, 환대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편 23:5)

 

이런 의미가 담긴 시간이라면 송구영신예배와는 그 중 잘 어울린다. 살아가며 입었던 몸과 마음의 병과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게 맞이하는 한해를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환대를 받으며 시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망설였던 것은 혹시라도 도유식을 낯설게, 의아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소수라 할지라도 그런 마음을 갖는 이들이 있다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익숙하지 않은 시간을 가지면 그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고, 그 불편함을 불편하게 풀어내는 이들이 있다. 도유식만 해도 그렇다. 천주교에서 온 것 아니냐며 경계하고 부정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개신교에서는 오래된 신앙 전통까지를 모두 부정하는 경향이 크다. 굳이 신구교를 구분할 필요가 없던 시절에 남겨진 신앙 유산까지를 말이다. 재의 수요일에 재를 이마에 바르는 것, 세족 목요일에 세족식을 하는 것, 다양한 형태의 기도생활을 하는 것 등 우리에게 전해진 소중한 영적 자산을 스스로 부정할 때가 있다. 그것이 얼마나 속이 좁은 일이며 얼마나 큰 손실일까 싶은데도 말이다.

 

설마 감신대에서 예배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근거 없는 말을 할까 싶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목회를 하며 받아들일 만한 자리에선 얼마든지 가져왔던 도유식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두 분의 장로님을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교우들의 정서를 알고 싶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로님들은 도유식의 의미를 편하게 받아들였고, 그런 과정을 거쳐 도유식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었다.

 

 

 

 

 

마침 예루살렘에서 직접 구한 올리브유(어노인팅 오일)를 한 후배가 전해준 것이 있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만큼은 아니더라도 기꺼이 그 올리브유를 쓰기로 했다. 옛 물건을 애장하는 권사님께 오래된 도자기 접시를 빌렸다. 접시받침대로는 낡고 오래된 작은 나무쟁반을 택했다.

 

짐작했던 대로 도유식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어른은 물론 자녀들까지 모두가 참여했다. 엄지에 묻힌 기름을 십자가 형태로 이마에 바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교우들도 “아멘!”으로 화답했다. 마지막 교우를 마친 뒤에는 부목사를 통해 나도 이마에 기름을 발랐다.

 

긴 시간 같은 자세로 서서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날 때쯤이 되었을 때는 다리가 뻣뻣했고, 말이 엉기기도 했다. 그래도 내게는 새해를 맞는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진심을 담아 기도하고 축복하는 자리였다. 몸이 아픈 장로님이 지팡이를 짚고 나와 섰을 때는 내가 하는 행위와 전하는 말에 주님의 은총이 오롯이 담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전에는 안수기도의 시간을 오래도록 갖기도 했다는데, 내게는 도유식이 안수기도의 의미이기도 했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씻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목이 칼칼하다. 말을 해보니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며칠 뒤 집회를 인도할 일이 있어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누군가를 축복하느라 목이 가라앉는 일이 세상에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마음  (2) 2020.01.04
오래 가는 향기  (2) 2020.01.03
가라앉은 목소리  (6) 2020.01.01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4) 2020.01.01
수처작주(隨處作主)  (4) 2019.12.30
검과 몽치  (2) 2019.12.29
posted by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신동숙의 글밭(46)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마당가 복순이 물그릇에 담긴 물이 껑껑 얼었습니다. 얼음이 껑껑 얼면 파래가 맛있다던 친정 엄마의 말씀이 겨울바람결처럼 볼을 스치며 맑게 지나갑니다. 개밥그릇엔 식구들이 아침에 먹다 남긴 삶은 계란, 군고구마, 사료를 따끈한 물에 말아서 부어주면 김이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면 복순이도 마음이 좋아서 잘도 먹습니다.

거리마다 골목 어귀마다 눈에 띄는 풍경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밤길을 환하게 밝히는 붕어빵 장사입니다. 검정색 롱패딩을 입은 중·고등학생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선 젊은 엄마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퇴근길의 아버지가 재촉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서 착하게 기다리는 집. 따끈한 붕어빵 종이봉투를 건네는 손과 받아든 얼굴이 환하고 따끈하기만 합니다.

요즘은 붕어빵 두세 개에 천원을 합니다. 옛날 제가 중학생 때 붕어빵 한 개에 오십원 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저녁 시간 오고가는 학원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붕어빵. 조금씩 사먹던 붕어빵을 실컷 먹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던 어느날, 천원을 들고 붕어빵 집으로 달려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중·고등학생 버스 요금으로 종이 회수권이 있던 시절, 회수권이 100원에서 150원으로 오르던 때라 학생 용돈으로 천원은 큰돈이었습니다. 혼자서 스무 개의 붕어빵을 놓고 물리도록 먹어도 열 개를 채 못 먹었던 그때의 기억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하나 둘 제과점이 생기고, 노점상 단속이 심해지면서 겨울철이면 늦은 밤까지 귀갓길을 환하게 밝혀주던 붕어빵 장사도 눈에 띄게 줄어든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이 거리 상권을 점령해버리고, 치킨과 피자 등 배달 음식에 잠시 밀려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붕어빵은 가격의 문턱이 낮아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가까운 착하고 따뜻한 고마운 양식이 되어줍니다.

 

 

 

   - 그림 : 신가영 작가 (이오덕 선생님의 '감자를 먹으며'의 삽화)

6·25 동족 상잔의 비극 이후,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 길거리에서 생겨난 먹거리 중에는 풀빵인 국화빵과 붕어빵, 호떡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뜨거울 만큼 온기를 머금은 거리의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때 그 시절 대부분의 장사들은 길바닥이 생계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차츰 장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경기의 큰 바람이 한 차례씩 불어올 때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던 노점상 단속. 국가 정책에서 볼 때 노점상은 말끔하게 치우고 싶은 가난한 시절의 그림자일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이 나라가 딛고서 다시 일어선 곳은 척박한 이 땅, 길바닥이라는 고마운 사실입니다. 땅과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성품은 흙의 온순함을 닮아 선함을 봅니다. 거리에 장이 서는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겹고 닫히고 끊어졌던 마음과 마음이 강줄기처럼 이어짐을 봅니다.

춥고 배고프고 어둡던, 겨울과 같은 그 어려운 시절에 겨울나무가 된 선조들과 부모님 세대들이 있습니다. 맨몸으로 길바닥에서 농촌의 흙을 일구듯 온몸으로 도시의 삶을 일구어 온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의 피, 땀, 눈물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이처럼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우리 선조들이 그와 같이 지나온 추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일 테지요. 

숨가쁜 경제 성장이 거리에서 깨끗하게 치운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골목마다 뛰어 놀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저녁밥 짓기 전에 모여 앉아 저녁 찬거리를 얘기하던 새댁들의 재잘거림도
어디론가 들어가버렸습니다. 생계와 생활과 놀이의 터전이었던 길과 골목이 찻길과 주차장이 되어버린 차가운 풍경들.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해 걸어가야 하는 거리의 행인들.

오늘날 붕어빵 장사 곁으로는 언제나 주차된 차가 있거나 시동을 끄지 않은 정차된 차가 멈추어 있기도 합니다.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눈에 겨울 밤거리의 붕어빵 장사는 어떤 풍경으로 다가갈런지요. 가끔 엄마의 입장에선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답니다. 앞으로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과 도로가 있다면 걷고 싶은 거리, 틈틈이 식물을 심어서 안전하고 맑은 거리를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은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여러 시절을 지나며 한 때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붕어빵 장사가 올 겨울엔 유난히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추운 겨울 밤거리에 온기를 가득 머금은 환한 등불, 붕어빵 장사가 그저 반갑고 고맙습니다. 오래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의 생계 자립을 돕는 지원 사업으로 유행을 타기도 하며 꿋꿋하게 겨울 밤거리를 지켜온 붕어빵 장사가 지켜온 것은 사람을 향한 온기인지도 모릅니다.

숨 막히는 건물로부터 거리로 내몰리듯 자연스레 모여드는 움직임이 이 나라 이 땅 곳곳에서 일어남을 봅니다. 들에 풀꽃처럼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버스킹, 거리 공연으로 세상과 소통하고픈 젊은 청년들이 둥글게 모여드는 곳도 거리입니다. 푸드 트럭으로 창업을 시작하는 곳도 길입니다. 유럽 나라들 중 국민 행복지수가 높은 곳은 개인 사장이 많은국가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 시대가 더불어 피운 꽃, 촛불집회의 꽃자리가 된 곳도 건물이 아닌 바로 길, 길바닥입니다. 길은 소통과 희망이 싹트는 땅, 목마른 이들에게 살아있는 샘. 내가 한 방울의 물이라면 낯선 세상과 조화롭고 아름답고 맑게 섞여서 흘러가야 할 첫 만남의 장소. 건물보다 먼저 있어온 길거리는 도시의 강줄기입니다.

초저녁 잠에서 깬 뒷좌석에 앉은 아들에게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줍니다. 짧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붕어빵은 어떻게 들고 가야할까요?'라며 물었더니, 아들은 '손에'라며 귀찮은 듯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짧은 대답을 툭 내뱉습니다. 장난끼가 오른 엄마의 '땡!'이라는 평가에 아들은 잠이 마저 깼는지 뒷좌석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썩입니다. 

'따끈한 붕어빵은 옷 속에 넣고 가야지. 이왕이면 가슴에 품고 가면 더 좋고, 그러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가슴도 따뜻해지고 붕어빵도 식지 않는다.'고 말해줍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의 첫날,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이 따뜻하기만 합니다. 온기를 듬뿍 머금은 따뜻한 말이 올 한 해 마지막 날까지 동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와 사랑과 행복을 가득 담은 덕담 한 봉투. 그 온기가 식지 않도록 따끈한 붕어빵 한 봉투처럼 가만히 가슴에 품어 보는 건 어떨까 싶은 그런 새해 첫날의 첫 마음입니다.


posted by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촌스럽게 칠해진 흰색 페인트 속에는 초록이 숨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보았음직한 그 나무 의자. 오랜 세월 많은 몸들이 앉아서, 힘에 부치도록 받쳐 주느라 무수히 삐걱거렸을 몸. 낡고 삐걱인다는 이유로 버려진 몸이 고마운 손길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고운 눈길만이 내려앉는 어여쁜 꽃받침이 되어서 새롭게 피어남을 봅니다.

    신동숙 2020.01.01 07:51
    • 몫을 다한 의자에게도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싶답니다.

      한희철 2020.01.03 07:56 DEL
  • 목사님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글 많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01 10:35
    • 2020년이 멋지고 의미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한희철 2020.01.03 07:57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6)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내게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남은 구절 중에는 윤동주의 ‘서시’도 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지위나 재산 등이 아니라 사소한 것, 의외의 것, 예를 들면 말 한 마디나 어투, 그가 보이는 몸짓이나 태도 등이 그의 존재를 충분히 말할 때가 있다. 윤동주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는데 내게는 이 한 구절이면 족하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사랑하려고 했던, 사랑과 사랑하려 했던 사이를 부끄러워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전이었다. 예배당과 별관 사이에 있는 중정에 몇 가지 허름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교회 안에 있는 비품 중에서 버릴 것들을 모아둔 것이었다. 지나면서 보니 의자가 있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의자였다. 누군가가 흰색 페인트를 칠해서 촌스럽게 보였다. 무슨 이유였을까, 괜히 마음이 가서 의자를 집어 드니 허술하기 그지없다. 연결부위 곳곳이 약해져 힘도 쓰지 못할 의자였다.

 

 

 

 


그러는 걸 집어 들고 목양실로 가지고 왔다. 한쪽 구석에 놓아두니 볼 때마다 마음이 편했다. 이정록 시인의 시가 생각나기도 했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로 마치는 <의자>라는 시 말이다. 겨울에도 붉은 꽃을 피운 화분이 있어 의자 위에 올려두었더니 제격이다. 서로가 잘 어울렸다. 
 


‘serendipity’라는 단어를 나는 샘 키인의 <춤추는 신>에서 만났다. 그 말의 의미는 단어를 닮아 뜻밖이었다. ‘우연한 것, 하찮은 것 속에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내는 눈 혹은 그런 능력’이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럴 듯이 살아있는 것보다도,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일이다. 죽어가는 것들은 눈여겨보아야 보인다. 마음이 담겨야 손이 닿을 수가 있다. 새로 받는 한 해, 그리고 남아 있는 삶을 바라보며 다짐을 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 가는 향기  (2) 2020.01.03
가라앉은 목소리  (6) 2020.01.01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4) 2020.01.01
수처작주(隨處作主)  (4) 2019.12.30
검과 몽치  (2) 2019.12.29
나는 아직 멀었다  (4) 2019.12.29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