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우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13)

 

이름을 지우다

 

여전히 진행 중인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신천지의 태도는 혹은 신천지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이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 의미 있는 발언이나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에 페북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았다.

 

고맙고 든든한 눈길이 가는 내용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들도 적지가 않았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말들을 쏟아놓고 있었다. 지독한 경멸을 담은 글에 맞장구를 치면서 댓글을 달아 비아냥거리는 사람들, 희번덕거리는 웃음에 광기가 떠오르는 경우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온통 나라를 걱정하고 전염병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진정한 걱정보다도 가벼운 혐오와 증오를 쏟아놓는 것이었다. 그들은 희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목소리를 높여 하고 있는 일은 고작 혐오와 증오라는 지독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자신들이 외치는 내용이 자신들이 쏟아놓고 있는 막말과 혐오와 증오로 인해 스스로 부정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옳지 못한 경우,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신뢰할 수가 없다. 광장 한복판에서 날이 시퍼런 낫을 들고 광란의 춤을 추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내 생각이 옳다면 당연히 이야기를 하는 방식도 옳아야 한다.

막말을 퍼붓고 있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확인해 보았더니 폐친인 경우들도 있었다. 망설임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띄는 대로 친구 끊기를 해나갔다. 그렇게 이름을 지워나가니 그나마 절망스러운 마음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저렇게 알고 있다는 이유로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 앞에서 한 가지 다짐을 한다. 이런 일이 계속 짐으로 남는다면 미련 없이 페북을 접기로 한다. 홀가분함을 택하기로 한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듯 누군가도 내 이름을 지울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많은 관계들은 견고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고, 정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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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신뢰 국가, 믿음의 씨앗을 뿌리며

신동숙의 하루 한 생각(97)

 

한국은 신뢰 국가, 믿음의 씨앗을 뿌리며

 

호주 당국이 타 국가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와는 다르게, 한국에는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로 선진적 의료체계와 투명한 정보 공개를 제시했다. 3월 1일 가디언과 호주 ABC방송에 따르면 피터 더튼 호주 내무장관은 ABC 인사이더스와 인터뷰에서 이란보다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있음에도 왜 이란에만 입국 금지령을 내리고 한국에는 내리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뉴욕타임스도 코로나19를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민주적인 방법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매체는 “한국의 조치는 중국과 매우 비교된다”라며 “도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조치하면서 감염을 최대한 억제하는 전략이 효과를 거둔다면, 바이러스 위기에서도 시민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민주 사회의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의 슈피겔온라인은 "한국 정부는 환자들에게 대단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철저한 투명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이런 접근방식은 전 세계의 의료진들에게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 중에서 신뢰 국가로써 보여지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선진 의료체계와 투명한 정보 공개, 바이러스 위기에서도 감염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시민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민주 사회의 본보기로써 타 국가들도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처럼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도 정부를 신뢰하는 입장입니다. 믿음에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믿음이 모인 만큼 없던 힘도 생겨나서, 새로운 능력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제게는 그 믿음의 힘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톡톡히 맛본 경험이 있습니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 미리부터 많은 걱정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다잡은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을 신뢰하자.' 담임 선생님이 특별히 폭력적이거나 범죄자가 아닌 이상 아이 앞에서, 아이의 말에 공감은 하되, 사소한 말 한 마디라도 끝까지 선생님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보여주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의 입학과 함께 학부모가 되면서 그렇게 제 가슴에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라는 한 알의 씨앗을 단단히 심었습니다.

 

그 믿음의 힘은 실로 컸습니다. 일 년이 지난 후, 그 결실은 풍성했습니다. 학부모로써 담임 선생님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았을 뿐. 자녀에게는 받아쓰기와 일기장도 한 번 신경을 쓴 적 없는 무심한 엄마였습니다. 공개적 학교 상담 기간 외에는 선생님과 따로 자녀의 학교 생활에 대한 소소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습니다.(엄마들 학급 청소 도움과 도서관 봉사를 조용히 했었다.) 선생님과 전화 한 통 따로 나눈 적 없는 학부모였습니다. 단지, 학교에서 다녀온 자녀에게, 아침에 학교를 가는 자녀에게 선생님의 사소한 점도 놓치지 않고 칭찬하거나, 작은 일에도 지지를 보내거나,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좋겠다는 등의 말로 자녀를 다독일 뿐이었습니다.

 

2학기가 되어서 학교 상담기간에 교실을 찾았을 때, 저를 본 담임 선생님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ㅇㅇ이는 제 애제자예요. ㅇㅇ 같은 학생만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겠어요", 딸아이는 반 대표로 표창장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딸아이에게 학교는 행복한 놀이터와 배움터가 되었습니다. 저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누린 그 모든 행복과 사랑이 입학과 동시에 학부모로써 뿌린 담임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믿음의 씨앗이 자란 열매라고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가 선생님을 바라보았을 시선은 햇살처럼 환하지 않았나 그렇게 혼자서 짐작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그런 딸아이를 거울처럼 비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믿음과 지지의 힘은 그렇게 큰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현 정부를 신뢰하는 이유는 적어도 강압적으로 물대포를 쏘거나 대통령이 비겁하게 숨어버리거나 하는 등의 최소한의 믿음을 져버리는 행동은 아직까지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시작은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부족한 점은 채워가면 되는 것입니다.

 

집 안에 여러날 동안 스스로 머물러 있으면서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국가로부터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투명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꾸준히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를 대응하는 정부와의 첫걸음이 적어도 투명해서 다행입니다. 계속해서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면서 함께 가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제 성정으로 미루어 맹목적인 신뢰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깨어서 살피고 주시하는 따뜻한 신뢰입니다. 이 땅을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그리고 믿음과 신뢰는 칭찬과 지지와 따스한 시선을 꾸준히 먹고서 자라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렇게 뿌린 믿음의 씨앗이 거두어들일 열매는 실로 아름다울 것이라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다들 무사히 견디며 건강하게 이 시국을 지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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