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신동숙의 글밭(102)

 

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14만4천 명의 구원수 안에 들기 위해서 이 세상과 가족에게까지 등 돌린 한탕주의 이기심.

 

전도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추수꾼이라는 거짓 사명을 따라서, 존엄한 인간을 진실과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 아닌, 거짓과 수단과 도구로 전락시킨 이기심.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일렬종대로 따닥따닥 맨바닥에 엎드린 사대주의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시절의 식민노예근성으로 구원 시험을 치르는 맹목적 구원의 이기심.


예수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으라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예수가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건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라, 하시며 전도 점수를 채우지 못하면 벌을 받기까지 하는, 성인의 한 사람으로써 인격 모독까지 감내하려는 그 조차도 이기심.

 

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기업에서 제 기업만 살리려고 영세자영업자들의 한 숨 소리에 등 돌린 큰 기업 정치에서 나라와 민족이 아닌, 제 명예와 가문과 따르는 당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정치와 사람을 수단과 도구로 이용하려는 탐욕과 이기심.

 

언론에서 추구해야 할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 아닌, 정치와 기업과 종교와 사회를 추수밭으로 보는 거짓과 권모술수와 탐욕과 이기심.

 

학교에서 저 혼자 점수를 올리려고 약하고 소외된 친구의 어려움에 등 돌린 이기심.

 

교회에서 정치와 경제 활동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면서, 적어도 저 혼자는 구원 받았다 착각하며 세상의 아픔에 등 돌린 이기심.

 

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서 개척해야 하는 신천지는, 새로운 세상이란,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세상 뿐이다. 내 마음 속으로 펼쳐진 너른 광야와 광활한 하늘 뿐이다. 그 외에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은 나만의 소유가 될 수 없다. 단지 나에게 잠시 맡겨진 나눔과 섬김을 위한 하나님의 것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진리의 몸이 된 예수, 진리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신, 양심. 오롯이 내게 주신 선물은 진리와 양심 뿐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주신 은총이요. 받은 선물이지, 내 것은 아니다. 그 진리와 양심을 가리는 모든 맹목적 믿음과 이기심과 탐욕의 마음이라면, 언제든지 거짓과 권모술수로 무장한 신천지의 추수밭이 될 수 있다.

 

권위에 맹목적으로 기대고
대중에 맹목적으로 기대고
정치에 맹목적으로 기대고
언론에 맹목적으로 기대고
학교에 맹목적으로 기대고
종교에 맹목적으로 기대는

 

맹목적 믿음과 추종과 탐욕과 이기심의 구름이 깔리면 진리와 양심의 맑은 하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맹목적이고 이기적이고 탐욕에 눈 먼 의식체라면, 그 누구라도 신천지가 줏어갈 추수밭의 이삭이 될 수 있다.

 

이제 보니, 거짓과 맹목적 믿음과 탐욕과 이기심이 낳은 자식이 신천지의 실체다. 거기에선 진실에 뿌리 내린 투명한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귓속 말로 속이는 권모술수에 교주 조차도 조종을 받고 있는 기자 회견 자리, 그런 한 모습이 신천지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한 연출 자체가 거짓됨과 부끄러움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에 등을 돌리고 있는 그들만의 구원 이기심은 탁하다.


그러한 구원은 예수가 말한 적도 없는, 온전한 거짓이다. 예수는 어린 양 한 마리에게까지도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햇살처럼 비추셨다. 예수는 이 세상 끝까지, 자신이 죽기까지, 스스로가 진리에 뿌리를 내린 온전한 섬김의 사랑 말고는 이 땅에 어둔 그림자를 한 발치도 남긴 적이 없다. 이제는 맑은 숨을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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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간수밌나요

  • 아~ 교회 언제쯤 가게 되는 걸까요?
    정말로...

    이진구 2020.03.08 10:44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18)

 

 

 언제간수밌나요

 

 

                      <교회에서 애찬을 만드는 교우들>

 

‘목사님교회언제간수밌나요’


한 교우가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 내용을 보고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짐작되는 게 있었다.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목사님, 교회는 언제나 갈 수 있나요?’

 

울컥 괜히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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