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영락없이 소리새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25)

 

십자가는 영락없이 소리새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밀양으로 들어간 사람, 부산이라는 도시의 삶을 등지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시골의 삶을 택한 그의 결정은 누가 봐도 무모해 보였다. 무엇에도 갇히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그의 영혼에 비춰보면 지극히 그다운 결정이다 싶긴 했다.


겨우 겨우 뿌리를 내리고 방울방울 제 땀 흘려 제 손으로 지은 집이 거짓처럼 홀라당 불에 타고, 집터에 남은 재처럼 삶의 근거가 한순간 지워졌을 때에도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그는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세워 올렸다. 그리고는 늘 너털웃음이다.

 

그가 소포를 보내왔다. 엉성한 포장을 뜯으니 거기 담겨 있는 고목들, 무엇인지 대번 짐작이 되었다. 그는 시간이 될 때면 주변 산에 올라 버려진 나무들에 눈길을 주었다. 쓰러진 채로 수명이 다한 나무들, 그래서 누구도 눈길 주지 않은 나무들을 살펴 썩어가던 중에도 남은 것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장 안에 담긴 것은 두 토막의 나무였다. 썩은 소나무에서 찾아낸 관솔이었다. 구멍이 난 곳을 맞춰 세우니 십자가였다. 다 썩은 것에서 썩지 않은 것을 찾아 만든 관솔십자가, 관솔은 의미에 있어서나 형태에 있어서나 십자가의 뜻을 잘 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로 만들어진 십자가, 관솔로 만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바라보자 십자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소리새였다. 마음에만 두고 있던 이야기를 동화로 처음 꺼내놓았던 것이 ‘소리새’였다. 폭풍우 앞에 모든 새들이 새터를 떠날 때 끝까지 남아 노래를 불렀던, 약한 자신을 붙들어 매기 위해 자기 발목을 스스로 나뭇가지에 묶었던 소리새. 눈앞에 서 있는 십자가는 영락없이 소리새의 형상으로 다가왔다.

 

만든 이도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 십자가와 함께 소리새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소리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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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감싸는

신동숙의 글밭(109)

 

온몸을 감싸는

 

 

 

온몸을 감싸는
따사로운 봄햇살이
안아주는 품인 것을

 

가슴을 스치는
한 줄기 봄바람이
홀가분한 날개인 것을

 

뼛속 깊이 들어
아려오는 봄비가
속 깊은 울음인 것을

 

없는 듯 있는
커다란 하늘이
살아있는 숨결인 것을

 

한순간도 멈춘 적 없는
한순간도 끊인 적 없는
경전의 말씀인 것을

 

굳어진 마음을 만지는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조물주의 손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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