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신동숙의 글밭(145)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두 자녀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은 어버이날 전야제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빠의 얼굴을 꼭 닮은 딸아이


중학생 딸아이와 아빠가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떠들썩하다가


개구진 딸아이가 손바닥으로
아빠 이마를 바람처럼 스치며 제 방으로 숨는다


커피 내리던 아빠가 반짝 자랑스레

"아빠 이마는 태평양"이라고 하니까


딸아이가 방문을 열며

"그러면 나는 울산 앞바다" 하며 웃느라 넘어간다


뒷정리 하던 엄마가
"그러면 동생은?" 하니까


신이 난 딸아이가 생각하더니
"동생은 태화강, 엄마는 개천"이라고 한다


엄마는 식탁을 빙 둘러 닦으며
"가장 넓은 건 우주,
우주는 하나님 얼굴이니까
우주 만큼 넓은 마음으로 살아라"고 말해 주는데


떠들썩 돌아오던 대답이 없다
하나님처럼 없다

'신동숙의 글밭 > 시노래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하여서 가난함은 아니다  (0) 2020.05.23
영혼의 종소리  (0) 2020.05.18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0) 2020.05.10
카네이션보다 안개꽃  (0) 2020.05.09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0) 2020.05.08
국수와 바람  (0) 2020.04.26
posted by

700일이 넘었어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8)


700일이 넘었어도


지난 6일은 친구가 이 땅을 떠난 날이었다. 그가 살던 미국의 시간으로 하면 5월 5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쩌면 아이처럼 살다가 아이처럼 떠난 것이었다. 하긴, 살아 있을 적에도 그는 훌쩍 어딘가로 떠나기를 좋아했고, 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나기를 좋아했었다. ‘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쓰는 마음이 아프다. 


1주기 때에는 그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올해는 그냥 지나기로 했다. 시간이 그만큼 더 흘러서는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이 멈춰선 이 때, 굳이 모이는 것을 친구도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내 핸드폰에는 친구 집에서 찍은 옛 사진이 들어 있다. 그 사진을 꺼내본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서 만나 그 중 가까이 지내온 다섯 친구가 모여 찍은 사진이다. 흑백사진 속 친구들의 모습이 풋풋하다. 가운데 앉은 친구는 역시 환하게 웃고 있다. 나머지 친구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어찌 먼저 떠난 친구가 가장 환히 웃고 있는 것일까 싶다.


그리움과 송구함으로 사모님께 짧은 글을 전했다. 사모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700일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모리 교수의 말처럼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면, 친구는 저리도 밝은 웃음으로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일 터, 하지만 그의 부재로부터 오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주를 독주이게 하는 것  (0) 2020.05.12
말로 하지 않아도  (0) 2020.05.11
700일이 넘었어도  (0) 2020.05.10
고마운 집, 고마운 사람들  (0) 2020.05.09
시절인연  (0) 2020.05.08
참았던 숨  (0) 2020.05.07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