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8)
700일이 넘었어도
지난 6일은 친구가 이 땅을 떠난 날이었다. 그가 살던 미국의 시간으로 하면 5월 5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쩌면 아이처럼 살다가 아이처럼 떠난 것이었다. 하긴, 살아 있을 적에도 그는 훌쩍 어딘가로 떠나기를 좋아했고, 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나기를 좋아했었다. ‘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쓰는 마음이 아프다.
1주기 때에는 그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올해는 그냥 지나기로 했다. 시간이 그만큼 더 흘러서는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이 멈춰선 이 때, 굳이 모이는 것을 친구도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내 핸드폰에는 친구 집에서 찍은 옛 사진이 들어 있다. 그 사진을 꺼내본다. 1978년 서울 냉천동 감신대에서 만나 그 중 가까이 지내온 다섯 친구가 모여 찍은 사진이다. 흑백사진 속 친구들의 모습이 풋풋하다. 가운데 앉은 친구는 역시 환하게 웃고 있다. 나머지 친구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데, 어찌 먼저 떠난 친구가 가장 환히 웃고 있는 것일까 싶다.
그리움과 송구함으로 사모님께 짧은 글을 전했다. 사모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700일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모리 교수의 말처럼 죽음이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면, 친구는 저리도 밝은 웃음으로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일 터, 하지만 그의 부재로부터 오는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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