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신동숙의 글밭(151)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5·18에 극동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 극동방송에 전파 선교비를 후원하셨는데, 다시 하실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편에선, 왜 하필 5·18에 전화를 하셨느냐며 못마땅한 듯 반문을 하였다. 


두 자녀 이름으로 두 구좌를 후원했었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가 자동이체가 되었으니까 4년이 넘는 기간인 것 같다. 당시에 극동방송 측으로부터 선물이 배송된 적이 있다. 책 한 권이었는데 창업자이자 현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이다. 그 안에 전두환 대통령이 김장환 목사의 집에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김장환 목사는 스스로의 행동을 자랑삼아 들려준다. 대통령이 내 집에 방문했는데, 여느 사람들을 대하듯 소박한 밥상이여서 대통령이 오히려 마음에 들어했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친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가 집에 들렀다가 슬쩍 100만원이 든 봉투를 주고 가더라는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는 한창 민중들이 어려움과 고통에 처해 있던 국가 고난의 시기였다. 


극동방송 홈페이지


전화 너머 극동 방송국의 점잖은 목소리에게 말했다. 목사님이 있을 자리는 예수가 있었던 자리가 아니냐고. 그랬더니 오히려 최근 감옥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장환 목사가 면회를 간 일화까지 들려준다. 김장환 목사의 말씀으로는, 내가 아니면 누가 가겠냐고. 목사가 누군 만나고 누군 안만나고 차별하면 되냐고, 누구에게든 평등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반문을 하였다. 예수가 언제 바리세인들하고 벗하였느냐고, 소외되고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낮은 자리에 있지 않았느냐며 점잖게 반문을 하였다. 그랬더니 점잖은 목소리가 하도 들어서 귀에 굳은살이 박힌 소리를 한다. 


사람은 다 나약한 것 아니냐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 아니겠냐고. 예수님 시대에는 그런 환경이여서 그랬던 거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도 성전이 있었고, 성전에서 장사를 하다가 혼이 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 언제 예수님이 바리세인들하고 나란히 같은 길을 걸었느냐며. 하지만 내 귀는 굳은살이 박힐 만큼 딱딱한 귀가 아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살아 있으려 발버둥 치는 귀다. 


후원하던 당시에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흘러 나오던 김장환 목사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극동 방송국 사옥 건축 헌금 모금 광고. 건축은 잘 하셨느냐고 물으니, 점잖은 목소리가, 홍대 쪽에 건물을 올렸다는 얘기를 한다. 평수를 물으니 400평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극동 방송은 광고비 없이 김장환 목사의 뜻에 따라서 100%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얘기한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선교비는 어디에 쓰이는지 뒤늦게 물었다. 방송국 운영비에 쓰이고 직원들 월급도 주고. 그 외에 어려운 이웃들을 후원을 하지는 않느냐고 물으니, 방송에서 들리는 내용이 곧 선교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 대구 코로나를 위한 후원금 모집을 한 것은 100% 지원금으로 나갔다는 얘기를 해온다.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자동이체를 끊으면서 극동방송은 일체 듣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다시 극동방송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들어달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래서 대답을 했다. 극동방송이 가난한 곳이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가난한 게 뭐가 좋은 거냐며 반문을 해온다. 건물도 있어야지 방문자들과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고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당연하다는 듯 얘기를 해온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나는 극동방송국의 번듯한 건물을 보고 후원을 한 게 아니라고,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오는 곳이라 마음을 기울인 것이라고.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을 훑어볼 때도 잿더미 속에서 진리의 불씨를 발견하고 싶어서 꼼꼼히 읽었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적어도 최근까지의 여정에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동 방송으로부터 잿더미 속에 불씨처럼 진리의 불씨가 보이는 날, 다시 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불씨는 한 사람으로부터 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진리의 양심이 밝은 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불씨는 감출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꿈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마저의 희망의 불씨라도 꿈꾸지 않고선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그리고 하필 5·18에 전파 선교 후원금을 재모집하는 전화는 좀 그런 것 같다는 얘기를 다시 해주었다. 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통화할 기회가 주어졌기에 제 편에서도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김장환 목사의 지나온 여정을 아는 눈 밝은 이들이 많다고. 스스로가 자서전에서 얘기했던 내용이기도 하고. 다만 말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까마득한 옛날의 예수라고 하지 말고, 오늘도 가슴에 살아 있는 예수의 여정을 따라가면 좋겠다고 했다. 기득권과 권력과 건물이 아닌 작고 소외된 이들과 동행하는 극동 방송이기를 바란다고 작은 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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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7)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안경을 맞췄다.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읽다보면 글씨가 흐릿했다. 노트에 설교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쓰면서도 받침이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마침 교우 중에 안경점을 하는 교우가 있어 찾아갔다. 일터에서 교우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새롭다. 마침 손님이 없어 같이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이 우선 검사부터 하자고 한다. 자리에 앉아 정한 자리에 턱을 괴자 집사님이 내 눈을 기계로 살핀다. 그런 뒤에 집사님이 가리키는 숫자를 읽는다. 애써 잘 읽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는 두툼한 철로 된 안경을 쓰게 하고는 렌즈를 바꿔 끼우며 다시 글자를 읽게 한다. 글자가 한결 또렷해진다. 


다초점렌즈보다는 가까운 것이 잘 보이는 렌즈를 먼저 써보기로 한다. 읽고 쓸 때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싶었다. 처음으로 쓰는 안경, 뿔테를 택했다. 나도 이젠 안경을 쓰는구나 싶은 작은 아쉬움이 지나는데, 증세가 이제 나타난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집사님이 위로를 한다. 


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니 새롭다. 희미한 것이 밝아져 마치 어둑한 데서 읽고 쓰던 중에 불을 켠 것 같다.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희미했던 세상을 밝게 바라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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